▶ 완벽한 미라 상태… 라이프 스타일 파악
▶ 식사 직후, 화살 맞고 동맥 파손돼 숨져
■ 빙하 속‘아이스맨’이 증언한다
독일 뮌헨 경찰국의 알렉산데르 호른 형사는 지난 3월 이탈리아 볼차노의 조그만 박물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남티롤 고고학박물관의 안젤리카 플레킨저 관장이라고 자신의 신원을 밝힌 여성은 “아주 오래된 미해결사건(cold case)도 수사를 하느냐”고 물었다. 호른 형사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안젤리카 관장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미제사건을 맡아달라”며 곧바로 수사를 의뢰했다.
오트지라는 별명을 지닌 신원불명의 살인사건 피해자는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 5,000년 전, 누군가에 의해 피살된 남성으로 그의 시신은 북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지대의 빙하 속에 냉동상태로 보존되어 있다가 글로벌 기후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인근을 지나던 두 명을 하이커에 의해 발견됐다.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미이라로 통하는 이 남성을 사람들은 종종 ‘아이스맨’이라고 부른다.
미이라는 남티롤 고고학박물관으로 옮겨져 지난 사반세기 동안 냉장보존 되어 누워있었지만 그의 사인을 추정할만한 단서가 포착된 것은 10년 전의 X-레이 검사를 통해서였다. 검사결과는 미이라 어깨 바로 밑의 등에 박힌 돌화살촉을 보여주었다.
연구진이 종합한 과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호른 형사는 기원전 3300년경의 어느날 외츠탈 알프스 인근의 산마루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은 아이스맨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전말을 제법 자세하게 재구성했다.
잘나가는 프로파일러인 호른 형사는 “처음 사건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너무 많은 시간이 경과된 사건이라 아무래도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시신보존 상태는 그가 최근 다루었던 사건의 피살자들에 비해 오히려 양호했다. 다른 피해자들은 모두 열린 공간에서 발견됐다.
빙하는 오트지의 시신을 자연 냉동상태로 보존했을 뿐 아니라, 얼음의 높은 습도가 그의 장기와 피부의 부패를 거의 완벽하게 막아주었다. 호른 형사는 5,000년 전에 사망한 남성의 위장 속 내용물이 무엇인지 상세히 알 수 있었다며 “심지어 지금도 피해자가 죽기 전 무엇을 먹었는지 파악이 불가능한 케이스가 종종 있다”고 밝혔다.
위장 속 내용물은 5,000년 전 오트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놀랄 정도로 정확히 짚어내는 단서가 됐다. 이미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킬러의 신원을 확인할 길은 없으나 범행동기를 추정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이다.
아이스맨에 대한 과학적 정보가 쌓이면 쌓일수록 그는 점차 뚜렷한 모습을 갖추어 갔다. 키는 5피트 5인치로 당시로는 평균 신장이었다. 체중은 110파운드, 갈색 눈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짙은 갈색 머리를 지녔으며 발 사이즈는 7.5였다.
사망시 나이는 45세에서 이쪽저쪽으로 6세 안팎으로 추정됐다. 신석기 말에 살던 남성으로는 상당히 많은 나이지만 최고조의 건강상태를 유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오트지는 하체가 대단히 발달했지만 상체운동은 거의 하지 않은 듯이 보였다. 과학자들은 아마도 거칠고 험한 길을 장기간 걸어 다닌 탓에 하체근육은 단련됐으나 상체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노동은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했다.
몸에는 지방이 거의 없었고 빠진 이빨도 없었으며 위쪽 앞니 사이에 3밀리미터 가량의 틈이 있었다. 마돈나와 엘튼 존이 갖고 있는 치간이개, 즉 선천적으로 벌어진 앞니였다.
박물관 냉동고의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그의 손은 유별나게 작았고, 힘든 노동의 흔적도 없었다. 그가 육체노동자가 아니었음을 가리키는 증거다. 소화기에서 나온 꽃가루 흔적을 조사한 과학자들은 오트지가 늦봄, 혹은 초여름에 숨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생애 마지막 이틀 동안 그는 뚜렷이 구분되는 세 끼의 식사를 했고, 해발 6,500피트 지점에서 계곡자락까지 내려온 뒤 다시 시신 발견 장소인 해발 1만500피트 지점까지 올라갔다.
몸에는 화살로 입은 등의 상처 외에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뼈까지 깊게 베인 자상이 있었다. 상처가 치유된 정도로 보아 죽기 하루, 혹은 이틀 전에 생긴 것이었다.
이런 정보들을 근거로 호른은 오트지가 자신의 마을에 내려왔다가 누군가와 심한 몸싸움을 벌인 것으로 추측했다. 몸에 다른 상처가 없는 점으로 미뤄보아 그가 싸움에서 이겼고, 아마도 상대를 죽였을 수도 있다고 호른은 밝혔다.
그의 추론은 이어졌다. 싸움을 끝낸 오트지는 곧바로 양식을 챙겨 길을 떠났다. 그가 지닌 무기는 돌을 깎아 만든 짧은 석검뿐이었다. 활을 만들기 위해 다듬던 6피트짜리 막대기와 사슴가죽으로 만든 전통도 갖고 있었다. 전통 안에는 열 두 개의 화살이 있었지만 화살촉이 붙어 있는 것은 단 두 개 뿐이었다.
호른에 따르면 오트지는 숨지기 1시간 30분 전, 외츠탈 알프스 1만500피트 지점에 짐을 풀고 느긋하게 앉아 식사를 했다. 메뉴는 야생염소 고기와 빵 형태로 빚은 훈제 통밀, 베이컨이나 치즈에서 나온 듯한 지방, 그리고 고사리였다.
식사를 마친 후 30분 뒤 오트지는 그를 뒤쫒아 온 킬러가 약 100피트 떨어진 거리에서 쏜 화살에 맞고 숨졌다. 상처의 각도로 보아 화살은 아래 혹은 뒤에서 날아왔을 것이고, 위나 뒤에서 쏘았다면 앞으로 몸을 굽힌 상태에서 맞았을 것으로 보인다. 화살은 왼쪽 겨드랑이로 들어가 쇄골하동맥의 약 반 인치를 꿰뚫었다.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치명상이었다.
호른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가치를 지녔던 오트지의 구리도끼와 옷, 최소한 6종의 짐승 10마리의 가죽과 털로 만든 옷과 전통이 시신과 함께 발견된 점으로 보아 강도의 소행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았다. 마을에서 벌어졌던 싸움에서 오트지에 의해 부상을 입었거나 죽임을 당한 자의 복수를 하기 위해 쫒아온 누군가의 소행일 것이라는 추론이다.
지난해 과학자들은 그의 시신에서 위궤양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균의 변종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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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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