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ttack of the Fanatical Centrists
▶ 폴 크루그먼 칼럼
미국 정치가 왜 이렇게 망가진 것인가?
우리가 처한 문제의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직접적인 원인은 이념적 극단주의다. 막강한 파벌들은 그들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숫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세계관을 고수한다.
내가 파벌이 아니라 파벌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했음에 주목하라. 두말 할 나위 없이 가장 최대의 훼방꾼이자 위험한 극단주의자들은 우파에 속해 있다. 그러나 집착과 현실부정을 일삼는 또 다른 파벌 역시 미국 정치에 엄청난 해악을 끼쳤다.
좌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급진 좌파는 미국의 정치판에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이 덴마크보다 더 좌측으로 움직이기를 원하는 유력한 국내 인사를 단 한명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가?
아니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파벌은 광적인 중도주의자들이다.
지난 며칠간 우리는 스타벅스의 억만장자 최고경영자 하워드 슐츠가 연출한, 터무니없으면서도 잠재적 파괴력을 지닌 구경거리를 지켜보았다.
정치 문외한인 그는 자신이야말로 미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슐츠는 분명 자신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아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적 지식에 대한 그의 환상이 유난스러운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전통적인 중도주의 독트린을 따른다.
우선 공채에 대한 집착부터 살펴보자. 이런 종류의 집착은 미국에도 그리스에서와 같은 경제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두려움이 사회 일각에 존재했던 2010년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나는 당시에도 그 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어쨌건 어스킨 보울스와 앨런 심슨이 “앞으로 2년 이내에 우리의 지출삭감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재정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이후 8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미국의 차입비용은 여전히 역사적 저점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낮은 차입경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에 대한 우려가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주류에 속한 경제전문가들은 “높은 부채 수준과 연관된 위험은 적자 삭감할 때 발생하는 해악보다 작다”고 말한다.
하지만 슐츠는 부채를 우리가 지닌 최대 문제로 지목한다. 그럼에도 중도주의자답게 적자에 관한 그의 우려는 기이할 만큼 선택적이다.
적자해소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재정적자대책위원회를 이끌었던 보울스와 심슨은 그들의 첫 번째 원칙으로 세율인하를 꼽았다. 슐츠는 소셜시큐리티 삭감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나 부유층에 대한 증세는 반대했다. 그야말로 우스꽝스런 대책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중도주의자들은 평범한 미국인들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줄 그 어떤 제안에도 맹렬히 반대한다. 슐츠에 따르면 전국민 의료보험은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전국민 무료 의료보험”이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비단 슐츠 한 명에 그치지 않는다. 며칠 전 마이클 불룸버그는 모든 미국인에게 메디케어를 제공한다면 카마라 해리스의 지적대로 “우리는 장기간 파산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캐나다는 (실제로 메디케어라 불리는) 싱글-페이어(single-payer) 의료제도를 채택했음에도 파산하지 않았다.
사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선진국은 전국민의료보험의 일부 형태를 갖춘 의료제도를 갖고 있으며, 이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다.
“전국민 메디케어”의 현실적 이슈는 비용이 아니다. 여기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세금은 현재 미국인들이 보험 납입금으로 지불하는 액수보다 적다.
대신 정치적인 문제가 있다. 민간보험을 공적인 프로그램과 맞바꾸도록 보험가입자들을 설득하기가 녹록치 않다. 바로 이것이 전국민메디케어 지지자들이 갖고 있는 현실적 우려지만 슐츠나 블룸버그가 말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재정적 중도주의의 특징은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제안하건 미국의 좌파와 우파 모두를 똑같은 극단주의자로 본다는 점이다.
이처럼 오바마 행정부 시절 내내, 지출삭감과 세수증대를 결합한 접근법으로 부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려드는 정치 지도자를 요구한 중도주의자들은 시장에 바탕을 둔 의료보험 플랜과 기반시설 투자 등을 제안하면서도 그들과 완전히 동일한 제안을 내놓은 주요 인물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민주당이 보다 진보적이나 결코 급진적이지 않은 제안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중도주의자의 수사는 신경질적인 톤으로 바뀌었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는 이미 미국 거주자들의 3분의 1 이상을 커버하고 있고, 다른 민간보험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나 슐츠는 전국민 메디케어는 “미국적이 아니다”고 말한다. 엘리자베스 워런은 테디 루스벨트가 그랬듯,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부유세를 제안했다; 반면 블룸버그는 부유세가 미국을 제 2의 베네주엘라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중도주의자들의 광신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순전한 허영심으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문가들과 금권정치가들은 그들을 정치적 씨움에 초연한 우월한 존재로 상상하기를 즐긴다. 그들 스스로를 좌로건 우로건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은 채 홀로 우뚝 서있는 존재로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미국 정치의 현실은 비대칭적 양극화다: 극단적 우파는 막강한 정치 집단인 반면 극단적 좌파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용기 있다고 자처하는 우파들은 어떻게 처신할까?
그들은 너무도 자주 환상의 세계로 후퇴해 은둔자처럼 그 안에 첩거한다. 폭스 뉴스의 거품 속에 갇혀 지내는 우파를 방불케 한다.
이런 환상의 세계에서 해리스 혹은 워런과 같은 사회적 민주당원들은 재림한 유고 차베스로 묘사된다. 따라서 실제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중용에 대한 용기 있는 두둔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며, 남은 우리에게는 중도주의자의 환상에 빠져들 의무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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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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