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몇 달 전 칼럼에서 대중의 인기와 관심을 먹고 사는 유명 인사들에게 깨끗한 이미지는 소중한 자산이지만 자칫 비수로 돌변하기도 하는 ‘양날의 칼’이라고 썼다. 대쪽 이미지를 바탕으로 국민적 지지를 얻고 대권 후보까지 올랐던 이회창 후보가 아들의 병역문제에 걸려 넘어진 것을 사례로 들었다. 깨끗하다는 이미지가 지나칠 정도로 부각되고 이것이 트레이드마크로 굳어지면서 그는 다른 정치인들 같았으면 별 것 아닐 수도 있었던 사안에 발목을 잡혀 낙마했다.
그러더니 지난주에는 국무총리에 지명된 안대희 변호사가 전관예우 문제가 불거지고 논란이 확산되자 후보에서 자진사퇴했다. 전 대검 중수부장과 대법원 판사를 지낸 안 변호사에게는 공직생활 내내 ‘국민검사’라는 찬사가 따라 다녔다.
검사 시절 그 자신도 이런 세간의 평판에 만족하고 즐기는 듯한 뉘앙스를 여러 인터뷰에서 풍겼다. 8년 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내가 전관예우를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전관예우를 받을 생각이 없다”며 깨끗한 처신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한 달 평균 수임료 3억원이라는, 전례 없는 액수의 전관예우를 받아 온 사실이 드러나자 좋았던 이미지는 한순간에 그를 향하는 칼날이 돼 버렸다. 안 변호사가 정말 더 큰 자리를 꿈꾸고 있었다면 전관예우의 유혹을 뿌리쳤어야 했다.
또 국무총리 자리 제의가 왔을 때 전관예우가 발목 잡으리란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정중히 고사했더라면 최소한 클린 이미지는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수십년 공직생활을 통해 조심조심하며 공들여 쌓아 온 이미지가 작은 욕심과 판단부족으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서 대중의 환심을 사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호의적인 이미지 만들기에 혈안이다. 정교하게 계획돼 만들어진 이미지는 대중의 의식을 장악해 그들의 판단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니엘 부어스틴은 일찌감치 이런 현상을 간파한 미국의 역사학자다. 그가 1960년대에 펴낸 ‘이미지와 환상’은 마치 오늘날을 진단하기 위해 쓴 예언서처럼 읽힌다.
그는 정치인들의 이미지 만들기에 주목한다. 말과 글이 아닌, 영상과 비주얼이 주도하는 시대가 되면서 대중 정치인들은 ‘좋은 그림’이 나오는 이벤트를 연출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형성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이벤트를 ‘가짜 사건’(pseudo-event)이라 부른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재래시장을 찾거나 환경미화원 옷을 입고 벌인 ‘서민 코스프레’ 같은 것이 바로 이런 가짜 사건들이다. 이렇듯 만들어진 이미지는 현실적 효용가치가 크다. 하지만 분명 그들의 실상은 아니다.
안대희 변호사가 국민검사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노 대통령 측근들을 포함한 정치 실세들에 대해 벌인 거침없는 수사였다. 당시 언론들(특히 노 대통령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보수 언론)은 ‘미스터 클린’ ‘대쪽’ 같은 수식어를 동원해 그를 상찬했으며 이것은 그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하지만 안 변호사의 거침없는 행보는 그와 고시 동기로 검찰의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해 준 대통령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안 변호사가 이명박 시절이나 현 정권이었더라도 같은 강단을 보일 수 있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그리고 그런 의문은 이번 낙마를 통해 그의 이미지에 끼어 있던 거품이 드러나면서 타당성이 어느 정도 확인됐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지 활용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고도로 계산된 이미지 메이킹은 성공에 필수적이다. 여기에 막강한 힘을 가진 언론들을 우호적인 세력으로 끌어들인다면 금상첨화다. 잘만 하면 최고의 자리에까지도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가 실제로는 뼛속 깊숙이까지 체화돼 있는 단단한 가치가 아니라면 그것은 한갓 허상일 뿐이다. 그리고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허상은 그 밑바닥을 꼭 드러내게 돼 있다. 우리는 이것을 지난 15개월 동안 수도 없이 목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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