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에 무려 3만6000개… 2010년부터 사실상 포화 상태
▶ 창업 전문가 ‘차별화한 맛과 운영 능력 절대적으로 필요’
‘치킨집이 한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렇게 자극적인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치킨과 맥주의 합성어인 ‘치맥’이 어느덧 일상어가 될 정도로 치킨은 한국 음식문화에 깊게 뿌리내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말 그대로 ‘대세 음식’이 된 치킨을 만들고 배달하는 치킨집이 왜 한국경제를 위협한다고 무지막지한 경고를 날린 걸까.
치킨집은 소자본 창업이 가능한 데다 소비층이 폭넓어 예비창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업이다. 특허청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이전 연간 100여에 불과하던 치킨 결합 상표출원은 2009년 405건, 2010년 422건, 2011년 609건, 2012년 470건, 2013년 554건 등으로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만만하면 치킨집’이라는 창업 속설을 통계가 증명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치킨집이 얼마나 많이 있는 걸까? 누가 통계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3만개 안팎의 치킨집이 운영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KB카드 개인사업자 가맹점을 대상으로 치킨집 현황을 분석해 만든 ‘국내 치킨 비즈니스 현황 분석’에 따르면 2011년 현재 한국의 치킨집 수는 3만6,000여개다. 이 중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2만5,000개(71%)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통계청은 이보다 적은 2만9,095의 치킨집이 2011년 운영됐다고 발표했다.
통계는 달라도 공통점은 있다. 땅덩어리 크기는 똑같은데 치킨집 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치킨집 수는 3만1,139개로 전년보다 2,044개 늘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2002년 이후 치킨집이 매년 평균 2,348개씩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치킨집 수가 급증하는 만큼 치킨 시장 역시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지난 10년간(2002~2011년) 음식업종의 매출은 2.3배 증가한 반면 국내 치킨시장의 총 매출액은 3,300억원에서 3조1,000억원으로 약 9.2배 증가했다”고 했다.
2005년까지 연평균 900억원 단위로 증가하던 치킨시장은 2006~2008년 연간 2,800억원씩 성장했으며 이후 치킨집 증가율이 급격히 둔화됐음에도 2011년까지 매년 5,400억원씩 증가했다.
1인당 닭 소비량도 대폭 늘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987년 1인당 소비량은 3.7마리에 불과했으나 2002년 8.9마리로 늘더니 2012년엔 12.9마리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닭 소비량이 늘어난 만큼 치킨집 사장들도 많은 돈을 벌고 있을까.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7년간(2004~2011년) 치킨집 1곳의 연평균 매출은 3,600만원(2004년)에서 8,100만원(2011년)으로 2.2배 늘었다. 치킨집의 영업이익률은 30.3%로 계산한다. 매출원가ㆍ임차료ㆍ인건비ㆍ세금 등을 제외한 수치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치킨집 개인사업주의 연소득은 평균 2,500만원이다. 치킨집으로 버는 순이익이 전문대 졸업자가 중견기업에 취직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초봉(2,530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더 절망적이다. 치킨집 1곳의 연간 순소득은 2006년 2,480만원에서 2007년 2,101만원, 2008년 2,193만원, 2009년 2,124만원, 2011년 2,003만원, 2012년 2,032만원으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수입도 적지만 망하기도 쉬운 게 치킨집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치킨집 창업 후 3년 이내에 휴ㆍ폐업 하는 비율이 절반(49.2%)에 가깝고 창업 10년 이후 최종 생존확률은 20.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휴ㆍ폐업한 개인사업자의 평균 생존기간이 3.4년, 음식점업 생존기간이 3.2년인 데 반해 치킨집의 평균 생존기간은 2.7년이 고작이다. 안정성이 다른 음식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셈이다.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면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일단은 접는 게 낫다. 2001년 이후 창업한 치킨집의 휴ㆍ폐업률을 조사했더니 프랜차이즈나 일반점이나 휴ㆍ폐업률은 별반 다르지 않다. 프랜차이즈 휴ㆍ폐업률은 76.2%였고, 일반 치킨집 휴ㆍ폐업률은 83.6%였다. 10개 중 8개 안팎이 망하는 건 같다는 얘기다.
치킨집을 여는 게 얼마나 무모한 도전인지는 통계를 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0~2011년 치킨집을 창업한 급여 소득자들을 분석한 결과 창업 전 소득이 3,300만원으로 조사됐다. 창업 후 영업소득이 2,40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000만원 가까이 소득이 줄어드는 셈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무급 가족 종사자를 감안하면 실질소득 하락폭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회사원이 치킨집을 열면 가족들 고생은 고생대로 시킨 뒤 ‘쪽박’을 차기 십상인 셈이다. 이렇게 치킨집은 어느새 대표적인 레드오션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 치킨집은 이미 포화 상태다. 주거ㆍ근무지 1㎢ 내 치킨점 수는 2002년 6.5개에서 2010년 12.9개로 꾸준히 늘었지만 2011년부터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있다. 치킨집이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갈 곳이 없을 정도가 됐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치킨집을 포함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음식점 수는 12개로 미국의 6배, 일본의 2배에 이른다면서 치킨집과 같은 자영업이 잇따라 파산하며 1,000조원에 달하는 한국의 가계부채가 날로 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조기퇴직자들이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치킨집 등을 창업했다가 망하는 사례가 되풀이돼 한국경제가 위험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여ㆍ52)씨는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창업할 수 있다기에 5,000만원을 대출받아 치킨집을 열었는데 한 달에 150만원 벌이도 힘들다”면서 “돈이 안 벌려 계속할지 말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가 치킨집을 연다면 ‘망하는 지름길이니 딴 걸 알아보라’고 권유할 것”이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외식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치킨점은 소비연령층이 넓고 주방이 간단하며 식자재관리가 쉽다는 점에서 예비창업자들의 선호도 1위 아이템이지만 경쟁이 치열한 만큼 생존하기 쉽지 않다”면서 “치킨 메뉴로 살아남으려면 차별화한 맛과 운영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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