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성동격서’(聲東擊西)는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공격하는 전법이다. 동쪽에서 들리는 거센 함성은 서쪽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대비를 소홀하게 만든다. 그 사이에 허술해진 쪽을 공격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이 전법이다.
소음은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킨다. 들어야 할 것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만든다. 집중력을 방해하고 정신 사납게 만드는 데 소음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성동격서는 군사적 전법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중의 관심을 호도하고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데도 시끄러운 소리를 이용하는 방식은 유용하게 사용된다.
최근 한국을 달구고 있는 유병언 사체 발견과 그의 아들 유대균 체포 보도는 전형적인 소음이다. 언론의 보도 내용은 세월호 참사의 핵심과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특히 유대균 체포와 관련된 보도를 보면 그가 세월호 참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저리들 난리일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횡령과 배임이다. 액수만 놓고 보면 흔하디흔한 경제사범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유대균의 도피 중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데 혈안이 돼 있고 함께 있다 잡힌 미녀 경호원 스토리까지 더해지면서 선정성은 증폭되고 있다. 범죄혐의만으로는 세월호 사건과의 관계가 불분명한 이들이 이송되는 과정은 TV 등을 통해 거의 생중계 되다시피 했다. 영문을 잘 모르는 국민들은 희대의 흉악범이라도 체포된 것 같은 분위기에 덩달아 휩쓸려가고 있다.
이런 소음 속에서 정작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목소리는 묻혀버리는 분위기다. 당국이 사안의 핵심을 흐리기 위해 언론들, 특히 시청률을 높이려 선정적 보도에 주력해 온 종편의 조력을 받아 국민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다는 비판이 전혀 근거 없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일부 공중파 방송들까지 뉴스 프로그램의 앞부분 절반을 유씨 부자와 관련한 말단지엽적인 흥미위주 보도들로 채우고 있으니 이런 의구심은 한층 더 확신이 된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쏟아져 나오는 이런 보도들은 참사의 본질을 흐리는 소음이다. 소음이 너무 심하다 보니 진짜 들어야 할 진실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들으려 노력해도 그 소리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세월호 진실 규명에 그토록 중요하다던 유병언과 유대균이 실제로는 진실 호도에 이용되고 있다.
네이트 실버는 이런 소음의 위험성을 강력히 경고해 온 지식인이다. 실버는 ‘예측의 귀재’로 불린다. 그는 지난 미국 대선에서 50개주 선거결과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전부 맞춰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자신의 예측 정확성이 높은 것은 정보들 속에서 소음을 제거하고 신호를 찾아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버는 우리가 예측에 실패하는 이유는 정보부족 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정보가 너무 넘쳐나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은 9.11 사건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도 그랬다. 그러나 관련 정보는 많았다. 미국은 정보더미 속에서 소음을 제거한 후 신호를 찾아내는 일에 실패해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호를 감별해 낼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과잉정보는 과잉소음이 된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매체들이 매일매일 쏟아내는 보도량은 엄청나다. 하지만 이것들 대부분은 그저 소음일 뿐이다. 실버 같은 안목을 지니지 못한 보통사람들은 소음에 놀아나기 십상이다. 세월호 관련 보도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진실에 다가서기보다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있지 않은가.
실버는 “신호는 진실이다. 그런데 소음은 우리가 진실에 다가서지 못하도록 우리의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고 결론짓는다. 마치 요즘 한국사회를 꼭 집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언론의 본령은 국민들이 소음에 현혹되지 않고 진실을 볼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런데도 ‘소음제거기’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소음제조기’가 되고 있으니 나라가 어지러운 게 너무나도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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