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서아프리카에서 창궐하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또 각국의 보건 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런 가운데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의료 활동을 펴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의사 등 미국인 두 명이 본토로 긴급 이송돼 치료에 들어갔다.
타국에서 죽음에 직면한 환자들을 돕다 감염된 자국민을 이송해 치료해 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와 인도적 차원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에 항의하는 이메일과 전화가 관계당국에 빗발쳤다. 또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와 인터넷도 이송 반대 여론으로 뒤덮였다. “왜 에볼라 환자를 미국에 데리고 와 바이러스를 퍼뜨리느냐”는 것이 요지였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사스처럼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병이 아니다. 오직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나 동물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서만 감염된다. 따라서 미국으로 이송돼 격리 치료를 받는 환자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감염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도 된다. 그런데도 마치 이들이 미국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바이러스 확산의 기폭제라도 되는 양 패닉 반응이 일고 있다.
이런 히스테리성 반응에는 1995년 개봉된 영화 ‘아웃브레이크’의 잔영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했던 이 영화는 미국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며 발생하는 대혼란을 그리고 있다.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가 콩고에서 미국으로 밀수입되면서 캘리포니아에서 사망자가 속출한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영화에서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공기를 통해 퍼져나가는 것으로 묘사됐다. 과학적 사실과는 다른 내용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사실과 픽션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특히 영상을 통해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는 활자보다 훨씬 강렬하고 오래 간다.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 소식을 TV 보도와 인터넷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바이러스를 실제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기 쉽다. 범죄 소식을 전하는 야간 TV 뉴스를 많이 본 사람일수록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더 위험한 곳으로 여긴다는 조사결과도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상어에 대해 공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에서 발생하는 상어의 사람 공격사고는 연간 16건 정도에 불과하며 이로 인한 사망자는 2년에 1명꼴도 되지 않는다. 반면 떨어지는 코코넛에 맞아 숨지는 미국인은 연간 150명에 달한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은 코코넛은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상어는 무서워한다. 모두 다 1970년대에 빅히트를 쳤던 스릴러 ‘조스’의 영향이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이런 상황을 악용해 사람들의 공포를 증폭시키는 작업에 나선 바이러스만도 못한 존재들이 있다. 온갖 악성 루머들을 퍼뜨리는 음모론자들이다. 알렉스 존스가 대표적이다.
존스는 “에볼라가 미국을 강타하면 연방은행이 가혹한 비상권력을 행사할 것이며 독재 권력이 도래할 것”이라는 황당무계한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그는 그동안 질병통제센터가 전염병을 퍼뜨려 사회적 혼란을 부추긴 후 연방정부가 이를 빌미로 독재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에볼라 사태가 그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상황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에볼라 창궐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취약한 공중보건 체계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이들 국가에서 돌고 있는 “에볼라 환자들이 병원에 가면 죽여서 장기를 적출한다”는 괴담이 사태확산에 한몫 하고 있다. 이를 두려워 한 환자들이 집에서 치료를 받다 죽고 병을 확산시키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에볼라 재앙을 한층 더 키우고 있는 것이다.
에볼라 감염 환자 이송에 쏟아지는 비난이 너무 안타깝다. 이 또한 괴담과 유언비어를 유포해 불신을 조장하려는 세력의 의도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같은 무지와 선동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수칙만 잘 지킨다면 두려워 할 게 없다. 이보다는 집 앞 팜트리 열매가 떨어지지 않나 살피고 자동차 벨트 매는 걸 잊지 않는 것이 우리 안전에 한층 더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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