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사회조윤성 논설위원 가을클래식 월드시리즈가 시작됐다. 올 월드시리즈는 LA 팀들이 일찌감치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김이 빠지기는 했지만 흥행요소는 어느 해보다도 풍성하다. 만년 하위였던 캔사스시티 로열스의 기적 같은 질주는 언더독에 끌리게 마련인 팬심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월드시리즈가 와일드카드 팀들 간의 대결로 펼쳐지는 것도 흥미롭다.
와일드카드란 정규시즌에서 디비전 1위를 하지 못한 팀들 가운데 성적이 좋은 팀을 골라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제도이다. 1994년 메이저리그가 와일드카드를 시행하기 이전에는 정규시즌에서 디비전 우승을 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시즌 끝이었다.
하지만 와일드카드가 도입되면서 디비전 우승이 힘들어진 팀들도 시즌 막바지까지 최선을 다하게 됐다.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경기까지 전력을 다하도록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긴장감과 박진감을 높이자는 게 메이저리그의 계산이었다. 이 계산은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경쟁이 한층 더 흥미로워지고 흥행도 대박을 치게 된 것이다.
기회의 창을 넓히면 경쟁의 역동성은 커지게 돼 있다. 기회가 제한될수록 돈과 권력을 쥔 사람이 유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경쟁은 별 의미가 없는 형식으로 전락해 버린다. 세습사회와 다를 바 없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으로 대어급 선수들을 마구 끌어모을 수 있는 빅 마켓 팀들은 경쟁에서 한층 유리하다. 메이저리그가 스몰 마켓 팀들을 배려해 와일드카드를 도입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셈이 됐다. 올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로열스와 플레이오프 단골인 탬파베이 레이스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와일드카드 자격을 얻은 팀들은 정식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놓고 단판 승부를 겨룬다. 와일드카드는 1등이 되지 못한 팀들에게 주어지는 한 번의 추가적인 기회이자 배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듯 턱걸이로 플레이오프에 오른 와일드카드들의 우승확률이 정규시즌 1위 팀들보다 오히려 높다는 사실이다.
와일드카드는 스포츠의 역동성만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사회가 활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도 와일드카드가 필요하다. 몇 년 전 어떤 개그맨이 개그프로에서 내뱉었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사회’라는 독설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런 사회에서 한 번의 실패는 곧 인생의 낙오를 의미한다. 그래서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많이 나오지만 현실은 이런 요구에 귀를 막은 채 날로 더 살벌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와일드카드는 1등이 아니어도 마지막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상징한다. 미국은 이런 기회들이 아직까지는 존재하는 사회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이다. 미국 역시 일류 대학 들어가서 일류 대학원을 졸업하는 엘리트들이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게도 기회의 문은 열려 있다.
투자펀드사에서 일하며 수천만 달러를 벌어 남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40대 한 한인이 바로 그런 사례다. 그의 대학교육 출발점은 샌타모니카 칼리지였다. 그는 2년 후 UCLA로 편입했으며 여기서 열심히 공부해 대학원은 하버드를 졸업했다. 곧바로 일류 대학부터 시작하지 않더라도 뚜렷한 목표를 갖고 노력하면 성공의 계단을 오를 수 있는 곳이 미국이다.
학비도 아끼고 수재들과의 경쟁에 치이지 않으려 일부러 전략적인 우회를 택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중학교에 들어가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식의 극단적 강박이 널리 퍼져 있는 한국에서라면 2년제 전문대학-4년제 스카이 편입-최고 명문 대학원 졸업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그나마 맥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일부 논란 속에서도 어퍼머티브 액션이나 정부 입찰 때 소수민족 우대, 실리콘밸리의 패자부활 같은 배려 문화와 시스템이 존속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약자들도 또 한 번의 기회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게 된다. 금년 플레이오프에서 대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와일드카드들처럼 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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