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평함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무수한 실험을 통해 인간은 공평하지 못한 것을 잘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래서 공평하지 않을 경우 설사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상황을 바로 잡으려 든다.
어른들 뿐 아니라 어린아이들까지 마찬가지니 공평함의 추구는 인간의 본성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무엇이 공평한 것인가라는 해석에 들어가면 사람마다 관점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이념적인 좌표와 정치를 대하는 태도가 결정된다.
공평함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평함은 보통 ‘평등’의 의미를 함축한다. 반면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공평함은 ‘비례’의 의미를 지닌다. 자기가 기여한 만큼 그에 따르는 보상을 받아야 하며 이로 인해 불평등이 발생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신의 생각은 이 두 가지 관점의 중간쯤 어디엔가 자리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공평함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 정의로운 사회인지에 관한 논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리가 매일 지겨울 정도로 접하는 정치적 다툼은 이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것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 불거진 증세 논란이 바로 그렇다.
이와 관련해 석학 두 명이 정의로운 사회의 성립요건을 놓고 기억할만한 논쟁을 벌였다. 정치철학자 로버트 노직과 ‘정의론’의 저자 존 롤스가 그들이다.
간단히 요약한다면 노직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일해서 번 것을 모두 소유해야 하며, 그것이 설사 커다란 불공평을 의미한다 해도 아무도 그들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고 믿는 자유주의자이다. 노직의 주장은 특히 낮은 세금 주창자들에게 논거를 제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롤스는 출생이든 재능이든, 아니면 기회이든 본질적으로 불평등은 우연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그런 속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롤스가 불평등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능력과 노력에 따른 차등보상까지 반대하지는 않는다.
최근 발표되는 학술적 연구들은 롤스가 주장하는 ‘성공의 우연적 경향’을 강력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사회학자이자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라케시 쿠라나는 “기업의 실적은 최고경영자의 행동이 아니라 개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업계 및 경제 전체의 성과 같은 외적인 요인에 더 좌우된다”고 말한다.
노직의 논리에 따르면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많이 떼어가는 것은 정의에 배치되는 행위다. 그러나 롤스의 논리에 따르면 부자들에 대한 중과세는 우연한 요인에 의해 발생한 불평등을 바로 잡는 행위가 된다.
한국에는 노직의 논리를 지지하는 부자들이 대다수이고 미국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롤스의 논리를 수긍하는 부자들이 한국보다는 비율적으로 많은 것 같다. 이런 부자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사회의 인프라와 무수한 인재들의 도움, 그리고 행운 덕으로 돌린다.
지난해 미국 헤지펀드 매니저 3명이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무려 130억달러라는 거액을 기부해 온 것으로 드러나 화제가 된바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행을 철저히 숨겼지만 한 언론이 국세청 자료를 입수 분석하는 바람에 정체가 밝혀졌다.
컴퓨터 계량분석을 이용한 투자로 대박을 터뜨려온 이들은 기부사실이 드러나자 “우리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단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운 좋게 주어졌을 뿐이며, 많은 돈을 기부했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인정을 받을 이유는 없다”며 언론노출을 극구 사양했다.
이들의 기부와 겸손이 표준적인 부자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발언과 행위에는 정의와 공평함에 대한 독특한 인식이 배어있다. 또 성공에 있어 순수한 개인적 재능과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도 곱씹어 보게 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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