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올해 안으로 방미계획을 공식화하는 등 얼어붙었던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서두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 국가안보국(NSA)의 도감청에 대해 별다른 사과나 재발방지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도 양국 간 해빙을 서두르는 것은 그만큼 다급한 처지라는 얘기다. 국영 석유업체인 페트로브라스의 비리 스캔들 등으로 궁지에 몰린 호세프 대통령에게 미국 방문은 국면 전환의 호기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지구 반대편인 중국 시진핑 정부의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 작업에서 나온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고속에서 중고속 성장시대로의 변화를 본격화하면서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은 브라질 경제의 현재는 물론 미래마저 위협 받고 있다. 중국이 기존의 수출·투자중심에서 내수로 성장 패러다임을 전환할 경우 글로벌 경제가 회복돼도 과거와 같은 원자재 특수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브라질의 고민이다.
이처럼 중국과의 밀월관계가 한계에 이르면서 브라질 정부는 서방에 손을 내밀고 있다. 아울러 유럽연합(EU)·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분위기 조성, 수출상품 다변화 등 경제 체질개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도 미국의 대중 봉쇄전략에 맞서기 위한 남미 지역의 정치·외교적 중요성은 여전하지만 원자재 확보처로서의 경제적 매력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또 베네수엘라·에콰도르·아르헨티나 등에 빌려준 돈을 떼일 가능성이 커지면서 중국은 남미에 대한 추가 자금지원을 머뭇거리고 있다. 이미 중국은 짐바브웨의 차관 지원요청을 거절하는 등 아프리카 자원 부국에 대한 진출 전략도 수정 중이다.
중국의 신창타이 작업이 다른 나라의 성장전략에 변화를 강요하는 동시에 국제 정치·외교적 역학관계에도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인접한 아시아 국가의 경우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신창타이 영향권에 진입하기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은 미 제조업과 고용시장·수출·무역수지 등에 호재다. 미 기업들과 근로자들로서는 자국시장을 놓고 중국과 피 터지는 경쟁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의 대미 수출 증가율은 10년 전부터 둔화추세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중국 내수시장이 급팽창하면 미 기업에는 기회의 창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뉴노멀’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정치·외교·경제적 위상에 ‘양날의 칼’이다. 아시아인프라 투자은행(AIIB) 출범을 둘러싼 주요 2개국(G2) 간의 갈등이 단적인 사례다. 사실 AIIB는 중국이 미국의 금융패권에 도전하려는 목적보다는 자국의 과잉설비 해소 등을 위한 일대일로(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경제권) 전략의 국제금융 수단이라는 측면이 크다. 사정이 이런데도 미국은 보기 드문 외교적 타격을 받았다.
특히 중국이 ‘세계의 내수시장’으로 떠오를 경우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 질서를 지탱해 온 ‘글로벌 임밸런스’(불균형)에 금이 갈 수 있다. 현재 글로벌 경제는 미국이 경제력보다 더 많이 소비해 달러를 해외에 공급하는 반면 중국 등은 벌어들인 달러를 다시 미국 자산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대미 경상수지 흑자가 감소할 경우 달러화는 유동성이 줄면서 기축통화의 지위를 위협 받게 된다.
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통화정책에도 제약이 불가피하다. FRB가 기준금리를 인상할 때 중국이 미 국채를 사주지 않으면 시장금리가 급등하면서 경기 회복세가 다시 거꾸러질 수 있다. 거꾸로 막대한 유동성을 풀어야 할 때 중국의 값싼 공산품 유입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물가급등의 부담을 안게 된다.
지금으로서는 중국의 뉴노멀이 글로벌 외교·경제지형에 어떤 메가톤급 파장을 몰고 올지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은 주도권 경쟁을 위한 상호 갈등 속에서도 공멸을 피하기 위한 타협책을 모색하고 다른 나라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글로벌 경제가 수십년에 걸쳐 진행되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 정부에도 AIIB 가입이나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단기 대응을 넘어 다방면의 지각변동에 대비한 장기 밑그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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