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의 디젤 배기개스 조작 스캔들이 안겨준 충격은 다른 기업 스캔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정확과 정직, 그리고 뛰어난 기술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온 독일의 대표적 기업이 벌인 희대의 사기극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모든 참사와 대형 스캔들이 그렇듯이 폭스바겐 사태가 터지자 그럴 줄 알았다며 ‘후견지명’식 분석을 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지금에서야 폭스바겐의 거짓이 드러난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는 것이다. 이런 진단을 하는 근거는 이 기업의 문화와 이사회 구조다.
폭스바겐의 기업문화는 한마디로 폐쇄적이다. 폭스바겐 이사회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아 독일 국민차 ‘비틀’을 만들어 낸 페르디난트 포셰 가문이 지배해 왔다. 의사결정은 위에서 아래로 일방 하달되는 권위주의적 구조다. 이사회와 다른 의견, 그리고 비판은 설 자리가 없다. 외부 소리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전혀 없이, 내부 소리만 계속 증폭되는 밀실 같다고 해서 폭스바겐 이사회를 ‘에코 체임버’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구조 위에서 폭스바겐은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질주해 왔다. 폭스바겐의 목표는 세계최대 자동차업체였다. 이 목표는 페르디난트 포셰의 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지난 1993년 설정한 것이다. 이후 폭스바겐은 오직 이 목표를 향해 일사분란하게 달려왔다. 그리고 지난해 2,025억유로의 매출을 올리며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이 기만과 거짓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맹목적 질주는 앞만 보고 무조건 달리는 것을 말한다. 한시라도 더 빨리 가야한다는 강박과 탐욕, 그리고 잘못된 목표의식 때문에 멈춤 신호나 과속방지턱 같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릴 뿐이다. ‘바른 길’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빠른 길’만 있다. 4년 전 배기개스 조작에 대한 문제가 폭스바겐 내부에서 제기됐지만 묵살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면 바른 길에 대한 고민 없이 맹목적으로 질주하던 기업은 예외 없이 큰 시련을 맞거나 망한 것을 볼 수 있다. 수년 전 도요타가 맞았던 위기는 폭스바겐의 현재 처지와 너무나 닮아 있다. 도요타 역시 세계 제일의 자동차 기업을 목표로 질주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GM을 제치고 그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같은 해 내부 은폐와 초심 실종 등 도요타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4년 뒤 1,000만대가 넘는 리콜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으면서 현실이 됐다. 문제점은 쉬쉬하면서 내부의 비판과 견제를 억누른 결과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기업 스캔들로 꼽히는 엔론 사태도 본질은 똑같다. 엔론의 부도덕한 사기꾼 경영진들은 주력인 에너지 사업을 건실하게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실적과 주가 부풀리기에만 골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마구 달렸다. 여기에 일조한 것이 거대 회계법인 아더 앤더슨이었다.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할 회계법인이 눈을 감아 버린 것이었다. 감시와 견제가 실종된 맹목적 질주의 끝은 자멸이었다.
많은 기업의 목표는 물론 최고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른 길을 통해 도달한 것이 아닌 최고의 자리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폭스바겐 등 한 때 정상에 올랐다가 곤두박질 친 기업들은 생생히 깨우쳐주고 있다. 편법과 거짓으로 오른 자리는 사상누각일 뿐이다. 바른 길을 잡아 주는 것은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견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이다. ‘군자론’에나 나올 법한 한가한 얘기 같지만 냉엄한 기업세계에서도 이 원칙은 변함없이 확인된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쓴 짐 콜린스는 “기업이 성공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는 리더가 쓴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견제와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만 알아도 결코 어처구니없이 몰락하거나 쉬 망하는 일은 없다는 말일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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