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에서 점심 시간의 화제는 발렌타인스 데이에 받은 선물이었다. 관심의 초점은 단연 이제 결혼한 지 갓 몇달이 안된 남자 직원 C 씨였다. 그는 지극히 미국적인 매너에 부드러운 성격을 지닌데다 완벽하지 않은 한국말이 듣기 좋아서 직원들이 자주 놀리는 편인데, 결혼을 한 후로 그 농도가 좀 더 심해진 편이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무슨 선물을 받았는지 물었다. "특이한 것"이라는 대답이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었다.
"쿠폰이요."
우리는 잠시 망연했다. 쿠폰이라니.
"아내가 직접 만든 거예요." "어디에 쓰는 건데요?" "자세히 다 밝힐 수는 없고요. 예를 들면 아내가 화가 많이 나있을 때라도 제가 쿠폰한장을 주면 아내는 쿠폰에 쓰여진 내용대로 순종하는 거예요. 웃어준다든지, 손을 잡아준다든지, 뭐 그런 것 있잖아요." "그것 참 좋은 거네요. 많이 받았어요?" "예" 그러자 한 남자 직원이 우리에게 눈을 찡긋하더니 그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에게도 좀 나눠주세요. 쿠폰은 나눠 쓸 수 있는 거잖아요?"
순진한 그는 얼굴이 벌개져서 두 손을 세차게 흔들었다. "안돼요, 안돼. 그건 저 혼자만 쓸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실컷 웃으면서 디지털, 닷컴 신세대들의 낭만과 젊음을 얘기했다.
지난 어머니 날, 9세 된 딸이 카드를 내밀었다. 서툰 그림이 그려진 카드에 온갖 사랑의 문구들이 앙증맞게 모여서 웃고 있었는데, 그 속에서 손바닥만한 종이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엄마에게 주는 쿠폰이라고 했다. 쿠폰마다 "엄마는 저에게 이런 일을 부탁할 수 있어요" 라는 문구 아래 신발 정리하기, 불평없이 바이얼린 연습하기, 등등이 씌여있었다. 제 딴에 엄마가 좋아할만한 것들을 짜낸 노력이 가상했다. 나는 불현듯 회사의 C씨가 생각이 나서 물었다. "고맙다. 그런데 뽀뽀랑 허그는 한 장도 없네?"
아이는 뭘 그런 걸 다 새삼스럽게 챙기냐는듯이, "엄마, 그것은 무한정 공짜야. 엄마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공짜로 줄게" 했다. "엄마는 정말 행복하다" 했더니 아이는 나보다 더 행복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각 세대마다 그 세대에 어울리는 사랑의 전달 방법이 있다. 쿠폰을 설령 알게 되었다 해도 386 이전 세대나 아날로그 세대들이 사용하기에는 웬지 편안하지 않다. 그러나 그 의도를 아름답게 활용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폰을 사용하고자 하는 이에게 있어서 필요한 쿠폰은 은혜에 버금가는 것이다. 특별한 수고를 하지않아도 거저 주거나 명시된 할인 금액의 두배까지도 할인해 준다. 쿠폰의 개념을 확장시켜보면 용서이고, 받아주는 것이고, 베푸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것인가.
이 쿠폰을 우리의 인간관계에 적용하는 것이다. C씨의 아내나 내 딸 아이가 만든 것처럼 좋은 내용을 담은 쿠폰뿐 아니라, 용기를 주고 격려를 주는 쿠폰, 상대방을 참아주고 받아줄 수 있는 쿠폰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 쿠폰은 실체로 만들어서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백지 상태로 마음 속에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쓰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들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방금 한 말이 내게 상처가 되었지만 용서해 줄께요, 이기적이고 무례한 당신의 행동, 이번 한번쯤은 참을 수 있어요, 등등. 때때로 더블 쿠폰의 개념을 적용하여 두배로 용서해주고 용납해 주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쿠폰이 통용된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 상대방도 이기고 나도 이기는 양승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약력: 전북대학교 생물학과 졸업
94년 문학세계 수필 등단
미주크리스천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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