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음악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갓난아기가 태어나 "으앙"하고 우는 첫울음 소리가 대개는 도레미파솔라시도의 ‘라’(A)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 전 각종 악기를 튜닝하기 위해 오보에가 불어주는 기준음 또한 ‘라’(A)음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조물주가 우리 인간의 몸을 노래하기 좋도록 조절을 해서 내보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모이면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노래방이 성업중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집집마다 가라오케 머신과 그럴 듯한 무대까지 갖추어 놓고는 연습에 연습을 해서 연말파티 때 깜짝 놀래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멍석을 깔아놓으면 하던 짓도 못하는 나는 내 차례가 돌아올 때쯤이면 슬그머니 자리를 뜨곤 한다. 내겐 무대공포증 비슷한 증상이 있다. 여고시절 음악시간에 실기시험을 보게 되면 걸상이나 피아노를 의지해야만 소리가 나올 정도로 무척 떨곤 해서 평소의 떠들썩하던 나와 틀리다고 놀림 깨나 들었었다.
친한 친구의 약혼식 날이었다. 식사 후의 여흥시간에 준비도 없이 간 내게 사회자가 노래를 시켰다. 거절 못할 상황에서 망설이는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신랑쪽 친구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주어야 나의 결혼 길도 순조로우리라는 생각에 머리를 굴려보았다. 가요는 왠지 촌스러울 것 같고 팝송은 자신이 없고 우리 가곡이 고상하고 무난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얼떨결에 부른 노래가 "기러기 울어 예는-"으로 시작하는 짧은 가곡이었다. 부르다 보니 식은땀이 났다. 축하의 자리에서 ‘이별의 노래’가 웬 말이란 말인가. 분위기에 초를 친 노래를 하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국에서 잘 살던 그 친구가 작년에 IMF의 영향으로 이 곳으로 이민을 왔다. 안정된 터전을 뒤로하고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오게된 친구가족은 여러 모로 어려움이 많았었나보다. 조금씩 조금씩 푸념을 하더니 급기야는 이혼 운운하는 말을 했다. 친구의 친정엄마라도 되는 양 화들짝 놀라며 극구 말리는 나의 과잉반응에 친구는 의아했으리라. 실은 친구네가 불화 한다면 그 책임이 나의 ‘이별의 노래’에 있지나 않았을까를 염려한 나의 오래된 고민 때문이었다.
나도 노래하기를 좋아하긴 한다. 독창보다는 여럿이 함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뛰어난 목소리는 아니어도 앞뒤좌우에 실력 있는 분들을 만나 순전히 좋은 자리를 확보한 덕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참여한 성가대 경력이 이십오년이 되었다. 남의 소리를 들어가며 튀지 않게 소리를 조절하여 이루어내는 아름다운 합창은 화려한 독창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양보와 절제가 필요한 인생의 지혜와도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교회에서 몇 가정이 모여 부부중창단을 만들었다. 요행히 그 틈에 끼인 우리 내외는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몇 곡 안되는 레퍼토리를 가지고 벌써 몇 군데의 행사에 찬조출연을 했다. 교회의 행사는 물론 라디오 방송의 ‘가족 노래자랑’ 과 ‘생명의 전화’ 모임에 초청받아 나갔었다. 노래를 필요로 하는 행사 치고 즐겁지 않은 행사는 없으리라. 뜻 있고 보람있는 일에 참여하면서, 몰랐던 일들을 듣고 배우는 재미에다 우리가 부른 노래로 칭찬까지 받고 보면 즐거운 시간이 나도 모르게 지나간다. 몇 번의 출연으로 무대 공포증도 조금 덜해졌다. 걱정거리가 그칠 새 없는 삶 속에서 음악이 주는 위로는 참으로 평화롭다. 오! 즐거운 인생, 오! 행복한 마음. 눈에 보이는 물질들이 인생의 질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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