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구로자와 감독 마지막 걸작 사무라이 영화
▶ 세익스피어 ‘리어왕’ 동양적 처리
고 아키라 구로자와 감독이 10년만에 완성한 그의 마지막 걸작 사무라이 영화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동양적으로 해석한 ‘란’(Ran·★★★★★·별 5개 만점)이 개봉 15주년을 맞아 새 프린트로 재상영된다. 1985년 이 영화 개봉 당시 구로자와는 75세였다.
심오한 주제와 찬란한 이미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방대한 서사시로 인간운명의 비극적 고찰을 마치 신이 우주를 창조하듯 압도적으로 묘사했다. 구로자와는 뛰어난 얘기꾼의 능력과 명화가의 일필휘지의 솜씨로 음모와 살육, 배신과 권모술수 그리고 책략과 복수가 뒤엉킨 인간 우행을 드라마틱하면서도 섬세하고 아름답게 화면 위에 채색하고 있다.
16세기 내란이 판을 치던 일본. 노 영주 히데도라 이치몬지(다추야 나카다이)는 어느 날 사냥을 나가 대권을 장남 타로에게 인계하고 차남 지로와 삼남 사부로에게는 제2, 제3의 성을 각기 물려준다. 그러나 사부로는 두 형이 불원 서로 남의 땅에 욕심을 내 살육을 자행할 것이라며 아버지의 결정에 불복하다 추방당하고 만다.
타로와 지로의 추한 본능과 탐욕 때문에 살던 곳에서 쫓겨난 히데도라는 30명의 무사와 함께 광야를 헤매는 뜨내기 신세가 된다. 히데도라 일행은 지금은 폐쇄된 성에 거처를 정하나 두 아들이 여기까지 쫓아오면서 히데도라의 무사들과 두 아들의 대규모 군대간의 치열한 격전이 벌어진다. 이 작품에서 숨이 막힐 정도로 처절하니 아름다운 것은 이 전투장면. 갑옷과 투구를 쓰고 마치 나비들이 팔랑거리며 나부끼듯 바람에 떠는 적과 황의 깃발들을 날리며 수천의 기마병들이 어두운 빛의 흙더미와 성곽을 향해 진격할 때 구로자와는 음향을 생략하고 고혼의 울음 같은 귀기 서린 음악(일본의 많은 명화들의 음악을 작곡한 토루 타케미추가 작곡)을 삽입, 살육에서 공포와 절대미를 느끼게 한다.
타로는 지로를 절대권력의 영주로 만들려는 지로의 장군에 의해 살해되고 남편 못지 않게 탐욕스럽고 또 간교하고 표독스런 타로의 미망인 가에데(미에코 하라다)는 어수룩한 지로를 위협, 자신의 사리사욕을 취한다.
아들로부터 배신당하고 또 형제간 싸움에 장남이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고 그리고 반세기 동안 자신이 정복해 온 모든 것이 초토화하는 것을 바라보던 히데도라는 분노와 배신감과 허무감 때문에 광인이 되고 만다. 마침내 히데도라는 자신이 쫓아낸 사부로와 재회하나 사부로마저 지로의 병사에 의해 저격 살해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히데도라도 절망감을 못 이겨 숨지고 만다. 살육으로 권세를 얻은 자의 인과응보적 말로다.
일불 합작영화로 작품 전체에서 흐르는 광기와 무상함의 분위기에서 동양적 허무주의 사상과 함께 삶의 종점에 이르렀던 구로자와의 현세를 보는 비장감이 느껴진다. 나카다이의 포효하고 통탄하고 체념하는 연기와 함께 하라다의 표독스런 연기가 일품이다.
로케이션 촬영, 세트, 미술 및 컬러 등 모든 것이 훌륭하다. 오스카 의상상을 받았다. 등급R. 31일까지 화인아츠(8556 윌셔, 310-652-1330)서 상영.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