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어머니날을 앞두고 여덟 살 짜리 딸에게 된통 혼이 난 적이 있다.
퇴근 후 집에 가보니 “Love, My Mom”이라고 붉은 글씨가 쓰여진 하트형 투명 플라스틱이 식탁 위에 놓여져 있어 뒤를 보니 자석이 붙여져 있는 것이 냉장고에 붙이는 스티커였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만들었나 보다 하고 무심코 집어서 냉장고 문 위에 붙였는데 다음날 아침, 그것을 발견한 아이가 이것을 누가 가져갔냐고 묻는다.
“어머니날 선물로 엄마를 주려던 것 아니냐?”고 했더니 “내가 아직 엄마에게 주지 않았으니 내 것인데 왜 나에게 말도 안하고 가졌냐”고 따진다.
자신이 주기 전이니 엄마 것이 아닌 자기 것에 손대었다며 얼마나 앙앙 울고 난리를 치는지 처음엔 달래었다가 소리를 질렀다가 또 사정했다가 하며 진땀을 빼었다.
어머니날 예쁘게 포장하여 칭찬 받고 뽀뽀도 받으면서 주려고 했는데 매너 없는 엄마가 먼저 그것을 차지한 것이 분한 건지, 내 것 네 것의 소유의식이 철두철미한 미국 교육의 결과인지 당혹스럽기만 했었다.
주위의 한인가정에서도 미국에서 자라는 아이와 한국에서 방문 온 일가 친척 사이에 이러한 사고방식의 차이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온 사촌언니·오빠들은 스스럼없이 서랍을 열어 볼펜 같은 것을 꺼내 쓰기도 하고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망가뜨리기도 한다. 이곳의 아이는 “왜 허락도 없이 내것에 손대느냐. 망가졌으니 물어내라”고 하고 한국에서 온 아이는 “가족끼리 무슨 소리냐? 헌 것이니 물어줄 수 없다”고 한다.
이런 경우, 이곳에 사는 어른과 한국에서 온 어른도 편이 갈린다. “헌 것이라도 멀쩡한 것이 망가졌으니 그에 따른 책임감은 있다”와 “무섭다. 다 아는 처지에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러냐”로 입장이 다르다.
하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미국에서 교육받은 아이의 주장이 합리적이다. 내 것 네 것을 따지는 것이 때로 징그럽고 인정머리 없는 것 같아도 얼마나 확실한 소유의식인가.
이런 사고방식은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내 것이 아닌 것은 절대로 욕심 내지도, 손을 대지도 않는 것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한국의 180여명 국회의원들이 1천억원이 넘는 안기부 예산을 선거 비용으로 유용하여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때, ‘내 돈, 네 돈’의 명확한 차이를 둘 필요가 있겠다.
그동안 대선 자금, 당선 축하금, 비자금 등등의 불로소득 규모가 몇 백억, 몇 천억이 보통인데 사실 이 돈은 개인 돈이 아닌 모두 국민의 혈세가 아니던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으로 갖고 있는 돈도 그렇다.
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미납한 추징금이 수백억에서 1천억 규모로 여전히 남아있다. 법원은 미납 추징금 강제 집행을 위해 전씨의 콘도 회원권과 벤츠 승용차에 대해 강제 집행 명령을 내렸지만 천문학적인 숫자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이 비자금은 두 명의 전 대통령이 군인으로 봉직하며 받은 수십년간의 월급과 대통령이 되어서 받은 월급을 평생 단 한푼도 안쓰고 모았다고 해도 어림없는 수치이니 자기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국민 경제는 파탄에 이르러 제2의 IMF가 온다고 전전긍긍해도 그들은 대를 이어 치부하고자 비자금 보따리를 꽁꽁 싸안고 눈 하나 꿈쩍 않는다.
어려서 내 것, 네 것의 구별이 명확치 못한 윤리 개념은 자라서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니 이러한 한국의 정치인들을 보면 미국 초등학교에 다시 보내 윤리 교육을 시키고 싶다.
사랑과 미움 같은 감정은 자로 잴 수 없고 도표처럼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지만 수치를 재고 양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계산하자.
구정물이 아무리 많아도 맑은 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면 점차 물 색깔이 깨끗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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