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거행된 조지 부시 미 제 43대 대통령 취임식은 우리에게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어떠한 이유이건 간에 대선 패배자와 승리자, 전직 대통령과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 사이에 이뤄지는 상견례, 이외 모든 장면들은 이 나라가 지닌 거대한 규모에 비해 하나같이 순조롭고 평화로워 보였다.
국민의 지지가 부시대통령보다도 더 앞섰던 고어부통령의 얼굴에서도 억울하게 졌다 하는 마음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 아주 환한 모습이었고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클린턴의 모습도 아주 온화스럽고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메릴랜드 비행장에서 케네디 공항으로 가는 도중 일일이 배웅하는 군중들에게 다정한 얼굴로 인사, 악수, 포옹하며 이별을 고하는 클린턴 전직 대통령의 모습, 이는 너무도 자상해 보여 마지막까지 풍기는 그의 인상에선 신선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부시대통령이 계단을 내려오면서 전직 대통령을 배웅하는 모습 또한 이색적이었다. 전직 대통령을 실은 차가 마지막 떠나기 전 다시 식장으로 올라오는 현직대통령의 모습은 전직과 현직 사이의 선을 완전하게 긋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연설에서 배우출신으로 인기를 얻었던 레이건 전 대통령(민주주의의 흐트러진 자유보다 정리된, 그리고 질서 있는 자유를 더 많이 구가함)의 정신을 닮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굳건하게 다짐해 보이는 등 약간의 보수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식장에 자리한 전직 대통령 가운데는 자신의 아버지도 와 있다고 해서 관중들을 자연스레 웃기기도 하는 여유, 이 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참 미국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비교해 볼 때 하나같이 모든 것이 장엄하면서도 아주 원숙하고 견고해 보여 한국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었다. 한국은 아직까지 너무 설익었다는 느낌이다.
불안하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안정돼 보이는 이들의 모습에서 한국의 경직된, 그리고 유난히 권위를 강조하는 한국의 분위기와는 너무나 대조됐다. 공항에서 떠나는 전직 대통령을 호위하는 불과 몇 사람의 경호원의 눈빛도 강하게 보였으나 표정만은 부드러워 언제 봐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한국의 경호원들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클린턴이 일반 시민의 몸으로 청바지를 입고 동네에서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은 대통령이 직무가 끝나면 일반인으로 돌아가기도 쉬운데 한국은 대통령을 그만두고 일반인의 몸으로 돌아가기도 힘든 것과 너무나 대조적인 느낌이 들었다. 백악관의 전경도 권위의 상징인 청와대에 비해 더욱 아름답게 비쳐졌다. “이 곳은 나의 집이 아니라 여러분의 집입니다.”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강대국의 대통령이 국민의 참 심부름꾼이자 대변자임을 겸허하게 강조했다.
이날 퍼스트 레이디 로라 여사가 입은 코발트색 정장 투피스와 같은 색깔의 코트는 유난스레 신선해 보이면서 이 나라의 상징인 자유, 평화, 사랑, 그리고 전진을 강조하는 것 같아 특별하게 느껴졌다. 난산 끝에 태동된 부시 정부가 이제 얼마만큼 정치를 잘해갈지 우리는 잘 모른다. 이번 취임식을 보면서 다만 한 가지, 미국의 참다운 민주주의 향기가 어떤 것인가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이를 배우기 위해 비판이나 부러움보다는 한발 짝 더 그들에게 가까이 가려는 노력과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미국에 온 것은 돈만 벌자고 온 것이 아니다. 이 것 저 것 다 몸으로 배우고 익혀 윤기 있는 생활을 하자고 온 것이다. 그러자면 지금부터 씨를 하나씩 바로 심어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나 하나 발판을 굳혀가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굳건해질 날이 있을 것이다. 이번 미 대통령의 취임식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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