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인도는 하얗다.
새벽부터 정오 무렵까지 하루의 거의 반나절을 뒤덮는 짙은 안개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도록 첩첩이 가려진 흰색의 병풍과도 같아 아침이면 사람과 나무, 동물과 차들이 유영하듯 나타났다 사라지며 안개속에 보일 듯 말 듯 스쳐간다. 환상과 신비의 나라로 그려지는 인도는 그러나 안개가 걷히면서 열악하고 비참하기 짝이 없는 거리와 천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2.600년전 고타마 싯달타왕자가 사문유관을 나설 때 보았던 병들고 굶어 죽어가는 노예의 모습이 21세기 하이테크 시대에도 그대로 남아있는 곳. 삶과 죽음, 유전과 무전의 차이가 극명하면서도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사람들의 나라, 그래서 인도는 유난히 수행자가 많은 은자의 나라 꼽히는 것일까.
지진참사가 휩쓸기 바로 전인 4일부터 20일까지, 15박16일의 긴 여정을 함께 떠난 사람들은 한국 정토회의 법륜스님이 이끄는 120명의 대규모 불교성지순례팀. 이중에는 LA의 한인 4명, 뉴욕에서 5명이 동참했고 불교신자뿐 아니라 크리스천과 무종교자, 목사도 1명 동참한 다양한 배경의 순례팀이었다.
여행은 LA에서 서울, 서울에서 봄베이, 봄베이에서 캘커타로, 비행시간만 22시간이 걸려 날아간 후 현지에서 전체 팀이 합류, 밤새 기차를 타고 무갈사라이라는 곳으로 향하면서 시작됐다.
8대 성지를 순례한 이 여행의 코스는 캘커타-무갈사라이-바라나시-보드가야-둥게스리-라즈기르-파트나-쿠시나가르-룸비니(네팔)-상카시아-아그라-뉴델리-봄베이에 이르는 인도의 중북부지역을 한바퀴 도는 광범위한 지역들로, 때론 하루 종일 버스에 시달리는 고된 여정이었다.
보름동안 방문한 30여군데의 성지 및 박물관, 관광지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곳은 4대성지인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 도를 이룬 부다가야, 최초로 설법한 사르나트, 열반한 쿠시나가라, 그리고 불교 최초의 정사인 죽림정사, 5세기 당시에 1만여명의 학생이 재학했던 세계 최초의 종합대학 나란다대학, 힌두교 성지인 바라나시와 갠지스강, 슬럼도시 캘커타와 타지마할등.
인상적인 것은 불교성지마다 한국사찰이 설립돼 있는 것과 인도의 곳곳에서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10년전부터 인도 여행이 이른 바 붐을 이뤄 겨울이면 수만명이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고 한다. IMF 이후 많이 줄었다는데도 5일 서울서 봄베이로 들어가는 비행기에만 성지순례팀이 세팀이나 동승했고 또 단신으로 혹은 두세명씩 돌아다니는 배낭족들이 많아 유명 관광지에서마다 한국인들의 모습을 흔하게 마주칠 수 있었다.
겨울철에 여행자들이 많은 이유는 인도의 날씨가 겨울에 가장 좋기 때문. 우기인 여름엔 살인적인 더위에다 몇달씩 장마비가 쏟아져 여행에는 최악의 조건이다. 그러나 건기인 겨울은 LA의 겨울 날씨와 거의 비슷한 편. 아침 저녁으론 화씨 40-50도 정도로 매우 쌀쌀하지만 낮에 안개가 걷히고 해가 나면 수은주가 70-80도로 치솟아 반팔 상의를 입어야 할 정도로 더운 날씨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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