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뉴스를 보니 지난 69년 내한 공연을 하여 소녀 팬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던 영국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32년만에 한국 무대에 설 예정이라 한다.
트윈 폴리오와 한대수에 의해 한국에 모던 포크 시대가 막 열리던 그 시절, 금발머리에 투명하리만치 새하얀 피부,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 부르던 클리프 리처드의 공연은 우리 대중문화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1940년 생인 그가 61세가 되어 다시 이화여대 축제에 초청된다니 그때의 소녀 팬들이 40대 후반과 50대 나이로 대학생 자녀와 나란히 앉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밀레니엄 전도사로 활약하는 그의 노래는 주로 선교음악으로 이뤄질 것 같은데.
아마 중학생 시절 단짝 친구였던 H도 그곳에 나타날 지 모르겠다. 하교 후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세 정거장 정도를 걸어야 했는데 길가 레코드 가게는 수시로 ‘The young ones’, ‘Summer Holiday’ 등의 노래를 틀어댔다. H는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꼼짝 않고 서있고 나는 스피커에서 멀리 떨어져 그녀를 기다려야 했었다.
지난 주말에는 맨하탄에서 생맥주· 청바지· 통 기타로 한국 현대사 최초의 신세대 문화를 이끌었던 가수 윤형주와 김세환의 듀오 콘서트가 있었다. 트윈 폴리오 멤버였던 윤형주, 김세환은 나이 지긋한 중년이 되어 옛 노래를 불렀다.
해변가에서, 불꽃이 터지는 축제의 밤에, 라일락꽃 향기 날리는 캠퍼스에서 들었고, 신입생 야유회에서, MT 모닥불 가에서 목 터지게 불렀던 30년 전의 노래들은 순식간에 세월을 건너뛰어 70년대 추억 속으로 관객들을 날라다 주었다.
객석에는 부부동반으로 온 40, 50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머리가 히끗 거리고 얼굴에는 곱게 주름이 내려앉은 그들을 보며 이 세대의 한인들이 미국에서 갈 곳은, 즐길 거리는 무엇인가를 떠올려보았다.
사실 뉴욕에 살면서 브로드웨이가 가까이 있다고는 하나 한국에서 손님이 와야지 갈까? 링컨센터, 카네기홀이 있다고는 하나 큰 맘 먹어야 가게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바쁜 이민생활 속에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고 골프를 즐기지도 않으며 시간이 나도 마땅히 정 붙일 곳이 없다보니 일 갔다오면 허구 헌날 한국 비디오만 보게된다는 한인도 있다.
그래서 한국 공연물이 뉴욕에 오면 한인밀집지역과 멀리 떨어져 살아도 보러 온다고도 한다. 그것은 긴장하지 않아도 한국말 대사가 귀에 술술 들어오고 배우나 가수의 몸짓에 우리 정서가 배어있어 가슴에 와 착착 달라붙는 것이 우리 것,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한인 대중문화 형성을 위해서는 한국의 최신유행 영화나 연극, 콘서트가 수시로 열릴 수 있는 전용극장이 필요하지만 아직은 요원한 이야기같다. 뉴욕에 사는 한인이 올리는 것이든 한국에서 초청된 것이든 중년부부들이 손잡고 갈 수 있는 좋은 공연들이 좀더 자주 있기 바란다.
그러나 이들 공연물들이 편하고 익숙한 것을 찾는 모든 중년세대들의 감정 또한 펑퍼짐하고 부끄럼 없을 것이라는 선입관이 배제된, 중년의 나이도 소녀처럼 감성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사실, 옛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의 불안과 좌절, 상처조차 감미롭게 기억되긴 해도 그 시절로 굳이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다시는 방황의 뜰을 거닐고 싶지 않은 것이다. 숨가쁘고 어지럽던 청춘, 지나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닌데 그땐 왜 그리 막막했을까.
중년의 나이는 세파에 시달리면서 인생을 40, 50년 정도 살았고 자녀도 어느 정도 키웠고 또 앞으로의 형편이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지만 관조, 여유, 포용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런 대로 살만하다.
나 역시 허리의 군살, 눈가의 주름, 이중 턱 조차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은 흘러가는 삶에 길들여진 것인가! 그러고 보면 중년의 나이도 썩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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