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분야의 전문가는 더욱 그렇다.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재질이 전문가로서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어제, 사랑하는 조카가 한국에서 음악대학에 지원했다가 낙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보기엔 피아노 실력도 뛰어나지만, 수능 성적도 최상위권이다. 그런데도 떨어지고 말았으니, 한국의 불합리한 입시제도를 욕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다 전문가일 필요는 없고 모두가 다 일등이어야 할 필요는 더더욱 없는 거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귀에 들렸을 리 만무하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병은 모두가 일등이 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등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는 개성이 강한 인재를 배출해 낼 수는 있을지언정 건강한 시민을 배출해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등을 하지 못하면 패배자가 되고, 사회생활에서는 소극적이거나 냉소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일등을 한 이는 사회 구성이 자기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어 역시 반사회적이고 삐딱할 수밖에 없다.
미술은 혼자 하는 게임이라 반드시 일등일 수밖에 없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다. 특히 합창은 일등이 아니어도 모두가 주역이 되는 장르이다. 함께 하지 않으면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서로 돕고 양보하고 다듬는 일 자체가 합창의 예술인 것이다. 평소에 일등 하던 이도 이등의 자세를 가져야만 가능한 것이 합창이다. 그런데, 이걸 모르고 너무 잘 난 일등이 여기에 끼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합창단은 물론이고 지휘자도 반주자도 오로지 자신에게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심지어는 곡의 선택이나 의상과 무대조차도 자기의 기호에 맞추라고 억지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음정이 맞지 않으면 반주자의 실력이 모자라는 탓이고, 화성이 맞지 않으면 합창단의 연습이 모자라는 탓이며, 박자가 맞지 않으면 지휘자의 음악성이 결여된 탓이다. 그런 뜻에서, 각 분야에서 한가락한다는 이들이 모여 빚어내는 오페라는 더욱 어렵다. 못난 놈들 모아 키우는 일이 아니라 잘난 놈들 깎아서 다듬는 일이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성악적 기교와 연기, 무대 장치와 연출, 오케스트라의 웅장함 등을 한군데로 모아 만들었기에 오페라를 종합예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살아가며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찾는 것은 큰 기쁨이다. 그 동안 적어도 서 너 번은 족히 봤음직한 돈 죠반니를 지난주에 다시 찾은 것은 아끼는 후배 장인준이 주역을 맡았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UCLA 음악대학의 작품이라 전문 오페라단의 프로페셔널한 맛이 떨어지는 부분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몇몇 배역들은 전체 밸런스를 깰 만큼 약했으며, 무대 장치라든지 오케스트라의 구성이 엉성했던 것도 흠이라면 흠이었다. 하지만 오페라는 성공적이었다. 교수와 학생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시종 진지하고 학구적인 태도를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었다. 장인준은 바람둥이 돈 죠반니 역을 충분히 소화해 낼만큼 성량도 풍부했을 뿐 아니라 연기 또한 신인답지 않았다. 아쉬웠다면, 바리톤의 매력을 한껏 표현해 낼 만한 부분에서 고음의 감정처리가 충분치 않았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타고난 미성과 건장한 체구는 서양 배우들 틈새에 마지못해 초대받은 왜소한 동양인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한 기품을 내 보이며 시종 무대를 압도하는 주인공으로 시선을 한 몸에 모았다.
그가 앞으로 이 분야에서 일등이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확인해 주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그의 친구들과 아내가 함께 자리를 했고, 부모님들도 자랑스런 아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한국에서 일부러 찾아 오셨다. 그의 오늘은 아마도 이들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우리 합창단과 입 한번 맞춰 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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