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영화가 미 전역에 붐을 이루고 있다.
한국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은 작년 12월 29일 개봉되어 맨하탄과 롱아일랜드 4개 상영관에서 상영되다가 22일 맨하탄 콰드 시네마스를 끝으로 뉴욕에선 더 이상 볼 수 없다.
원래 3월말까지 예상되었던 ‘춘향뎐’이 관객의 호응에 따라 상영기간이 조정되는 미 영화관에서 일찌감치 퇴장하고 올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서도 탈락한 이유를 찾아보자.
‘춘향뎐’을 보고 나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판소리에 압도되어 심신이 소모된 기분이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비장하긴 해도 낭만적이지 않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표정도 굳어있다. 유머가 없는 것. 대사가 아니더라도 방자와 향단, 월매의 몸짓은 얼마든지 폭소를 유발할 수 있는데 이것을 놓친 것이다.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데는 일단 성공했으나 감정 전달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화에선 설명하려 하지 말자. 스쳐 지나가는 시선으로도 잡을 수 있게 쉽고 편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홍콩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를 보면 장만옥과 토니 륭의 가슴속에 묻어둔 사랑이 냇 킹 콜의 노래를 배경으로 시종일관 관객의 가슴에 파고든다. 무언가 잡힐 듯 말 듯 하면서도 신비한 동양이 다가온다.
그리고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에는 수려하고도 광활한 자연, 숨을 조이는 박진감, 목숨 건 애틋한 사랑 등 영화가 갖추어야 할 눈요기, 흥미 거리, 긴장감, 재미 등이 모두 다 들어 있다.
내용이야 중국 무술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스승의 원수 찾기, 천하제일의 명검, 무술 겨루기 등을 빗겨갈 수 없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하늘을 나르고 물위를 걷는 중국 무술을 배우고 싶어진다. 중국도 가보고 싶어진다.
중국 영화 칭찬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앞선 한국 영화가 자꾸 나와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새,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강제규 감독의 ‘쉬리’,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등 잘된 한국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
왜 외국영화제 수상 권에 들지 못했을까, 한국 문화의 힘과 국제적 로비, 이런 것을 말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영화는 잘 만들고 봐야한다. 관객이 느끼는 것은 다 똑같다. 내가 “다시 보고 싶은 영화”면 다른 사람도 “다시 보고싶은 영화”이다.
한국영화의 장래가 밝은 것은 뉴욕을 비롯, 해외에서 공부하고 간 젊은 피들이 대거 영화판으로 몰려들었다는 점이다.
내 주위에서도 영화가 여러 사람의 인생 방향을 돌려놓는 것을 보았다.
“영화 얘기만 하면 밤새는 줄 모른다”며 결혼도 멀리 하더니 현재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영화촬영 중인 1.5세 후배, 언젠가는 각본·제작·주연 영화 한편 찍겠다는 것이 입버릇이더니 지금 충무로에서 실제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있는 직장 동료, 20년 이상 한국에서 잘 나가는 CF 감독을 하다가 40대 중반에 영화 공부하러 뉴욕에 온 이웃 등등 이들은 모두 “좋은 영화 한 편 만드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고 말한다.
21세기 예술의 장르는 영화인 것 같다.
사람들은 이제 인내와 상상력이 필요한 책을 읽지 않고 글도 쓰려하지 않는다. 컴퓨터에 길든 세대들이 자라나며 철학이나 문학이 실종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영화 한 편에는 역사, 철학, 문학,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담겨있다.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는 영화 한 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과거, ‘톰 아저씨의 오두막’ 책 한 권이 노예 해방운동에 영향을 주어 미국 역사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면 이제는 영화 한 편이 세계 역사를 뒤집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뜨는 영화’가 한국에서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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