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치는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함께 라운딩을 하고 나면 그 사람의 언행에서부터 그가 지니고 있는 인품까지도 다 알아낼 수가 있다. 운동 중에서도 본인의 양심과 에티켓을 중요시하는 골프라는 게임은 공이 잘 맞아만 주면 그대로 좋은 인품을 지키는데 별 무리가 없지만 조그만 공은 갈 데 안갈 데 가리지 않고 날라가기 때문에 공을 치는 사람을 애태우게 한다.
숲속 나무 뒤에나 풀 사이에 태연히 앉아서 주인의 양심을 시험이라도 할 것처럼 빤히 올려다 보고 있는 조그맣고 새하얀 볼은 야속하기가 그지 없다. 이럴 때 십중팔구는 주위를 한번 쑥 둘러보고 음모를 꾸밀 작전을 세운다. 다행히 다들 자기 볼을 찾아 뿔뿔이 헤어졌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판단이 될 때 그는 볼을 칠만한 데로 옮겨놓고 시치미를 뗀다. 물론 자기가 친 볼이 행방불명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여분의 볼을 슬쩍 꺼내서 마치 볼을 찾은 것처럼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게임을 계속한다. 그리고 또 스코어에서 속임수를 쓰는 데는 허다하다.
분명히 트리플 보기인데 더블 보기라고 우길 때는 물론 거기서 입씨름이 벌어지고 옥신각신 신사게임에 먹칠을 하게 된다. 직업적인 선수라 상금에 관계되는 일도 아닌데 왜 점수에 그렇게 집착을 해서 끝내는 자기의 추한 모습까지도 송두리째 드러내고 마는지, 골프라는 게임은 자신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리는데는 제격인 것 같다.
골프치는 사람은 이렇게 골프장에서 처음 보는 사람의 됨됨이를 우연찮게 알아보게 되지만 반대로 골프장 밖에서는 자기하고 친분이 있던 사람들의 심성을 무슨 일을 당했을 때 알아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 대등한 관계에 있을 때는 돈독한 관계가 별 탈 없이 유지가 잘 되지만 한쪽이 다른 한쪽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될 때 비로서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일전에 조그만 선거를 치루게 되었는데 특히 선거라는 일은 참 묘한 것 같다.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는 취직 부탁같은 것도 아닌데 유권자의 힘의 과시는 상상을 초월한다. 내 평생 살아오면서도 겪지 못한 복잡미묘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는 선거를 치르는 몇 주 사이에 다 알아버린 것 같다. 지푸라기 한 가닥이라도 잡고 싶은 내게 그 한표의 위력을 칼날처럼 휘두르면서 과시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늘 만나야 눈인사만 하던 사람에게선 오히려 용기와 힘을 얻게 되었는데 원래 이런 게 선거의 알파와 오메가인지 처음으로 겪게 되는 나로서는 인간관계의 한계를 느낀다.
상대방이 한 사소한 일이 나에게 심한 자존심을 손상하게 학 수도 있고 또 이쪽에서는 생각해서 한 일인데 저쪽에서는 별 도움이 안되고 전연 달갑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사실들은 아차하는 순간에 알아버리게 되는데 그 때는 이미 서로의 마음이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달아나고 난 다음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게 된다. 오해라는 괴물이 화석처럼 굳어지고 나면 인간관계는 더 이상 지탱할 수도 없게 되고 세월따라 두꺼운 나이테처럼 지울수가 없게 된다. 더우기 친분이 두터웠던 사이에서 받은 섭섭한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내 마음을 그대로 전달할 수가 있고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도 어느 경우이던 진실로 변함이 없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리지 않아도 좋으련만 그게 안되는 걸 보면 인간관계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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