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방준재(미주한인청소년재단 회장)
창 밖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입춘이 지났다지만 창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차갑기만 했고 진료가 끝난 후 불을 다 끈 채 구석방에서 바깥의 을씨년스런 풍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6시에 미리 해 둔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가기에는 너무 이른지라 시간을 그런 식으로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사무실 벨이 연거푸 울리고 누가 왔을까 의아해 하며 더 올 환자는 없다고 하며 퇴근하던 캐롤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비에 흠뻑 젖은 채 들어서는 환자는 ‘리처드’였다. 어느 일간지의 칼럼니스트이고 그의 형도 그 방면으로 유명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아이리쉬계’ 형제들이다.
“리치, 진료는 끝났어. 다음에 올 수 없나?”
“이것은 응급이야. 다음이라는 시간은 없어. 머리가 깨지는 것 같고 잠을 못 잔 것이 며칠째야.”
그렇게 말하는 그의 입에서는 하루종일 또 마셨는지 술냄새가 푹푹 풍기고 이삼년 째 많이 초췌해진 모습은 꼭 길가에서 깡통 들고 동냥하는 걸인의 형색이었다.
“리치, 너는 지금 죽음에의 길을 걷고 있어. 너의 모양이 뭐야. 술냄새 때문에 진료는 차치하고 대화도 못하겠어. 더구나 수면제 처방은 절대 할 수 없어. 술과 혼용하면 다음 날 깨지도 못하고 황천길이야.”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단 말이야. 잠 좀 자게 수면제나 처방해 줘.”
“너는 나의 직업을 잊어먹은 모양이구나. 사람 살리는 직업이지 죽음을 도와주는 장의사가 아니란 말이야.”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사무실을 나갔어야 했던 시간이 10분이나 지나고 있었다.
“리치, 너는 내가 도와주기에는 그 한계를 넘었어. 일반적인 내과 치료는 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놈의 술로 인한 너의 황폐된 정신상태는 딴 전문의가 필요한 듯 해.”
“그렇잖아도 내일 알콜 해독 전문병원으로 입원하려고 해. 너가 내 주치의니까 가기 전에 나도 이젠 내 스스로 도우겠다는 걸 보여주러 왔어. 오늘 진찰비 얼마야?”
“그건 관두고 갔다 오거든 같이 저녁이나 먹자.”
그의 얼굴이나 눈에서 그는 금방이라도 어린애처럼 와락 울 것 같았다.
가볍게 등을 두드려 주며 “리치, 너의 건강한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 우리 꼭 만나자구.”
사무실을 어깨가 축 쳐진 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얼마 전에 어느 신문에서 발표했던 한인사회의 알콜 중독자가 남자 성인 50%이상을 웃돈다던 기사가 머리를 스쳐가고 있었다. 충격적인 기사였다.
주량 물문, 주종 불문하며 낮도 밤도 없이 소맥이니 폭탄주네 하며 마시다가 해장술로 아침을 맞는 한인은 없는가 우리 한 번 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알콜 중독은 타 약물 중독처럼 연령을 불문하고, 남녀 성별을 가리지 않으며 자신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황폐의 길을 걷게 할 뿐만 아니라 주변 가족 친지, 더 나아가서 사회 일반에도 피해와 슬픔을 안겨주는 무서운 질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고 간경화의 말로로 죽어가는 처참한 모습은 현대의학도 어쩔 수 없다.
알콜 중독, 그것은 죽음에의 길이고 삶은 사자(死者)와의 만남의 길이 아니라 더 이상의 아름다움과 의의가 있다고 부르짖고 싶은 욕망을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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