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어스 선교정책이라는 게 있었다.
1890년대 초, 조선 반도에 들어온, 다양한 교파의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선교비용을 절약하고 실적을 올리기 위해 채택했던 대표적 선교정책이었다.
네비어스 정책을 기초로, 1893년 장로교 선교부 공의회는 전도의 목표를 상류층보다 근로계급에 둘 것을 결정했으며, 1895년에는 선교자금의 지출을 최소화시킬 것, 본토인들이 자급자족하도록 추진할 것, 본토인 스스로 책을 사고, 자체 교회를 짓고, 전도인의 봉급을 지급하게 할 것, 등을 구체적 정책으로 규정했다.
남장로회 선교사 레이놀즈가 한국인을 교역자로 훈련시키되 그들의 수준이 일반신자의 수준을 넘지 않는 정도에서 선택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는 기록도 있다.
막말로 표현하면, 조선 반도가 세계 열강의 말발굽에 짓이겨져 혼란과 절망에 빠졌을 때,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골라모아, 목사, 장로, 집사 등 계급장을 달아주며, 밖에 나가 전도해서 교인 숫자를 늘이라고 당근과 채찍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무식한 하류층 출신으로 조급하게 양성된 교역자들은 목사되고 장로되는 것을 벼슬하는 것으로 알았고, 돈 걷어서 교회당 짓는 것을 하나님의 일로 생각했을 것이다.
민중은 양떼이고 너희들은 목자다. 저들을 빨리빨리 교회로 몰아와라. 하고 내쫓으니까, ‘급하다 급해’ 하며 거리로 달려나가, ‘예수, 천당’만 부르짖었다는 예화도 있지 않은가.
카나다 선교사 스코트는 네비어스 정책으로 한국 기독교가 놀라운 성장을 이룬 것은 인정하지만, 지나치게 자주치리를 강조하다보니 교회 안에 계급조직이 생겨났으며, 자급의 강조로 인해 교회재정은 교회조직만을 위한것일 뿐, 사회복지적 의미나 사회문제에는 무관심한 공동체로 발전했다고 비판했다. 즉 교회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마땅히 해야할 일,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은 처음부터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자질에 따른 문제도 이때부터 이미 배태된 것이었다.
지난 2월 22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뉴욕 한사랑 교회 교인들이 피켓 시위하는 기사를 읽고 착잡한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것이 비단 한사랑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국 도처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또한 한국에 있는 크고 작은 교회들이 이런 문제로 진통을 겪게될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들은 병들었다. 선교 초기, 네비어스 정책의 후유증으로 성장은 했으되 성숙하지 못한, 즉 병적으로 비만해진 교회가 된 것이다. 이제 와서 100년도 더 전에 있었던 네비어스 정책을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질병의 원인을 알아내어 치료할 방법을 찾자는 것이고, 종교 개혁으로 카돌릭이 깨어짐으로 예수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처럼, 병든 부위를 수술함으로서 예수와 교회를 살려내자는 제안인 것이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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