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 유방암 시한부 인생 한국계 흑인 여성
"할아버지 가족과 함께 살던 곳에는 조그마한 산이 있었고 그 곳에서 나물을 캐곤 했습니다. 동산에서 놀던 시절과 이따금씩 찾았던 어머니가 있는 인근 동네 정경, 할아버지 옆에서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잠들던 기억, 어떨 때는 꿈이 아닌가 생각해 보지만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합니다."
유방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중년의 한국계 흑인 여성 쉐릴 피셔-콸스(한국명 최일선)씨가 한국인 어머니와 어릴 적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가족을 애타게 찾고 있다.
10세 때 미국 가정에 입양된 콸스씨는 양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 현재 세 아들과 두명의 손자까지 있다. 그러나 어릴 적 한국에서의 추억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속에서 커져만 간다고 말한다.
"지금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나를 길러준 양부모님들은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들과 손자들, 또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와 음식, 무엇보다도 한국의 아련한 내용은 여전히 내 오감에 남아 있네요."
6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피셔-콸스씨는 지난 99년 한국을 방문, 자신이 살았던 지역과 입양 기관의 기록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가족들을 찾는데 실패했다.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70세, 할머니는 90세 가량 됐을 거예요. 살아 계시다는 사실만 확인해도 행복할 것 같은데…" 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
피셔-콸스씨는 현재 가장 아쉬운 점이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한국말은 사과(apple)다.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사과 깎는 법을 배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 그러나 피셔-콸스씨는 오는 5월쯤 다시 한국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내가 너무 많은 축복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눈을 감기 전 꼭 피붙이를 한번 껴안아보고 싶어요. 만일 이 세상에서 안 된다면 다음 세상에서라도 내 가족을 만나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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