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생활 2년째인 멕시칸 스티븐 루세로(29)씨는 요즘 신이 난다. 전에는 무겁기만 하던 식품상자가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야채를 다듬는 손은 리듬 타 듯 날렵하다. 콧노래도 절로 난다.
7년전 캐나다에서 건너온 타데시 야타베(40)씨 역시 벙긋거리기는 매 한가지다. 루세로씨와 야타베씨만 그런 게 아니다. 이들 외 멕시칸 4명, 한국인 2명도 마음들이 푸근하다. 나날이 즐겁다.
항상 가슴을 짓누르던 불법체류자라는 사슬에서 곧 풀려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맨하탄 다운타운에 있는 야채가게 ‘그레이스 풀리’의 종업원들이다.
그레이스 풀리의 한인 사장 조경애(40 미국명 그레이스 댄시거)씨는 최근 이들에게 245(i) 이민 조항에 대한 스폰서가 돼주겠다고 자청했다. 그레이스 풀리 종업원들에게 이보다 더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
"나도 불법체류자 신세로 8년을 보냈어요. 우여곡절 끝에 영주권을 얻었을 땐 꿈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디다. 제일 먼저 한국으로 달려나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엄마를 끌어안고 한참 울었지요.
그 오랜 세월, 그 불안하던 마음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우리 종업원들이 떳떳한 신분을 갖고 마음 푸근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그만 도움을 주고자 할 뿐입니다"
조 사장은 8명에게 스폰서를 서 주었지만 나머지 종업원 10여명 가운데서도 부탁해오면 흔쾌히 들어줄 생각이다. 단순히 스폰서가 돼주는 것 외에 이민 전문 변호사와의 상담 시간까지 예약해주는 등 갖가지 편의도 제공하고 있다.
종업원들은 조 사장이 스폰서 문제를 먼저 꺼내자 꼭 그렇게 해줄 것으로 믿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245(i)조항에 대해 분명히 종업원들이 요구할 것이므로 사장이 추후 거부할 명분을 쌓기 위해 선수를 치고 나오는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한번쯤 얘기를 던진 뒤 "당신은 이런 이유로 스폰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거부할 명분 축적용 발언으로 평가절하했던 것. 그러나 곧 조 사장의 진심을 알고서는 앞다투어 스폰서를 요청했다.
미국 생활 11년 가운데 7년을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정동숙(43)씨는 "사장님은 평소에도 종업원들에게 언니, 누나처럼 따뜻한 정을 베풀어 주셨다"며 "사장님의 배려로 생각지도 못했던 적법 체류신분을 갖게 된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영주권이 나오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가보고 싶다"고 환한 표정을 짓는다.
조 사장은 "업주와 종업원이 서로 마음을 열면 작업 능률이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즐겁고 보람있는 일터로 가꾸어 갈 수 있다"며 "이런 차원에서 히스패닉 종업원들과의 노조 문제로 인한 갈등도 해소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본다"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비쳤다.
조 사장은 79년 도미, 13년 전에도 한인 3명에게 스폰서가 돼 주었고 이들과는 요즘도 자주 연락하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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