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PD 풋힐 디비전의 마크 아라곤(46) 사전트는 갱 출신의 외다리 경관이다.
풋힐 디비전 갱퇴치반의 책임자인 아라곤의 별명은 ‘걸어다니는 모순 덩어리’(walking contradiction). 별명이 시사해 주듯 그의 삶에는 서로 화합하기 힘든 이질적 경력이 한 몸으로 섞여 있다.
피코 리베라의 터주대감으로 소속감을 얻기 위해 14세 때 리베라 갱단에 가입한 그는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를 들고 설쳐대는 뒷골목의 망나니로 성장했다.
이 시절에 리베라 갱단은 그의 전부였다. 맞벌이로 정신 없는 부모들의 관심권에서 밀려난 아라곤은 폭력조직 내에서 가정에서 접하지 못했던 소속감과 유대의식을 마음껏 맛볼 수 있었다.
17세 때 지금의 아내인 게리를 만나 화촉을 가정을 꾸렸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천하에 두려울 게 없는 터프 가이였다. 그러나 첫 아들을 본 후 천둥벌거숭이인 그 역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아들의 안전을 위해 그는 19세 되던 해에 샌개브리엘로 이사를 갔다.
피코 리베라에서 차로 불과 10분 정도 떨어진 지역이었으나 샌게브리엘은 그에게 완전한 신세계였다. 그러나 갱단에서 발을 빼기란 예상보다 힘들었다. 그는 배신자라는 낙인을 피해 가끔씩 옛 동네를 방문, 리베라 갱단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파커 센터의 교도소에 직장을 잡은 아라곤은 그 곳에서 알게 된 릴 비오라노 경관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경찰시험에 응시, 당당히 합격했다. 갱단원이 어느 날 갑자기 경관으로 탈바꿈한 것. 그러나 이 같은 ‘신분 변화’에는 엄청난 대가가 뒤따랐다.
1987년 6월, 리베라 갱단은 순찰 중이던 아라곤을 차로 깔아 버렸다. 배신자에 대한 응징을 시도했던 것. 이로 말미암아 아라곤은 왼쪽 무릎 아래를 절단하고 의족을 달아야 했다.
잘라낸 한쪽 다리와 함께 아라곤의 인생은 망가지는 듯 싶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경찰국은 "체력검사를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아라곤의 복직 요청을 받아들였다.
뼈를 깎는 재활훈련 끝에 체력검사를 통과한 아라곤은 미국 최초의 의족경관으로 재탄생했다.
아라곤은 갱 조직원들을 접할 때마다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라"고 충고한다. 자신의 쓰린 경험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갱들의 은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그에게 조직원들은 굳게 닫혔던 마음의 빗장을 스스로 열곤 한다. 풋힐 디비전의 보물단지로 통하는 그는 여섯 명의 손자를 둔 행복한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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