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흔히 말하는 새파란 나이를 거쳐 펄펄 뛰는 한창 나이일 때에는 서양사람이나 흑인 보듯이 노인은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보았다. 그런 사람은 노인으로 태어난 것 같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주름살 하며 항상 아프다고 하시는 것들, 할아버지들 이 쑤시고 퉤퉤 뱉는 것이 우리와는 아주 다른 사람으로 보았다.
한 25년 전 어느 선배님이 나보고 몇 살이냐고 물을 때 40살이라고 했더니 “참 좋은 나이로구먼” 하던 말이 지금껏 잊혀지지 않는다. 그 때 나는 흔히 하는 말로 ‘한물 갔군’을 연발할 때인데...
7년 전에 생각한 바도 있고 아내의 충정어린 강요로 로 스쿨을 가서 주위사람들을 웃긴 적이 있다. 이 나이에 무슨 로 스쿨이야, 하고. 로 스쿨을 가니까 전부 내 나이의 반도 안되는 ‘짝궁’들과 나란히 앉아서 한 5년 공부를 하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흔히 있는 공통적인 교수에 대한 실력의 평가, 쉬는 시간에 공 치고 농구하는 것, 어울려 가서 병째로 맥주 마시는 일, 모자 거꾸로 쓰고 거들거리는 것, 저녁이면 왜 그리 생일파티가 많은지 실감 안나는 해피 버스데이를 하고 이 젊은 무리들에 어울려서 옆으로 3보 손들고 뺑 돌고 앞으로 구부려서 2보 하며 라인 댄스를 즐기는 것 등은 정말 내가 몇살인지를 잊게 하였다.
교수들도 내 아들보다 젊은 것은 물론 어떤 교수들은 나를 같은 교수로 아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학교의 명물이었다.
그리고 차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에게는 교수들의 나이가 나 보다도 들어보이고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많이 알겠지 하는 착각도 들기 시작하며 행동도 젊은이와 같이 하게 된다.
강의실의 문이 거울이 달린 것이 있었는데 어쩌다 문이 열려서 내가 비추어지면 그곳에 비치는 젊은 노랑머리 푸른 눈의 학생 사이에 거무틱틱한 백발의 동양노인이 비추이는 것을 보니 꼭 병아리 무리 속에 끼인 오리새끼 모양 보다 무엇이 다르겠나.
이제 나는 “어느새 이 나이를…”하는 나이가 되니 90이 훨씬 넘으신 나의 부모님은 “이제 한창 나이인데…”를 연발하신다. 이제 “갈 나이지” 하는 것도 머지않아 써먹을 것이고 내 이름 뒤에 옹짜를 달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이렇게 가는 나이를 속여서 더 부르고 깎아내리고 해도 먹는 나이는 먹게 되어 있다. 누구 말대로 “양손에 막대 잡고 오는 나이 막자했더니 나이는 먼저 알고 샛길로 오더라” 함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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