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델리가게 앞에 가면 하루의 끼니를 벌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무리지어 있다. 그들은 대개 히스패닉 계통으로 스패니쉬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다. 영어도 서툴고 가게 하나 차릴만한 돈도 수중에 없으므로 매일 이렇게 한 장소에 모여서 일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차도 없다. 일손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여기 와서 그들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차에 태워가서 일을 시킨 다음 다시 이곳에 데려다 놓기만 하면 된다.
마치 노예시장에서 노예가 팔려 나가듯이 그렇게 그들은 하루의 일거리를 위해 팔려 나간다. 집 짓는 공사장에도 가고 나무를 심기 위해 땅을 파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거기에도 간다. 그리고 무거운 짐을 옮기는데도 물론 마다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 속에서 호세를 만난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봄부터 손질을 해야 하는 뒷뜰을 그대로 버려두었더니 한 여름이 되니까 꽃나무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잡풀만 무성하게 자라서 보기만 해도 짐스러울 지경이 됐다 가시덤불이 뒤엉켜 있고 옻나무 줄기가 독을 뿜고 있는 뒷뜰에서 호세는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무려 일곱시간이나 일을 했다. 호세 덕분으로 주황색 나리꽃이 제 모습을 되찾았고 올봄도 노오란 나리꽃 새싹들이 봄의 소리를 다투어 올라오고 있다.
주어진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책임감있게 해내고 눈속임을 하지 않는 그의 장래 희망은 조경사라고 했다. 가난이 싫어 온 가족이 고향인 산토 도밍고를 떠나 미국에 온지 8개월이 된다는 호세는 가족하고도 떨어져 있다.
남들 같으면 대학을 졸업할 스물둘의 나이에 이제 영어를 배우면서도 호세는 서두르지 않고 당당하게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런 그가 기특해서 두시간 더 일한 만큼 품삯을 얹어 주었더니 셈이 잘못된 줄 아는지 종이에다 다시 계산을 한다. 완전하지 못한 그의 영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그는 말 대신 몸으로 의사 소통을 많이 한다.
보너스라고 말해도 그는 끝내 사양하는 미덕을 보였다. 일한 만큼 받고 자기 할일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꼭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의지가 호세의 좌우명인 모양이다. 그런 그를 보면서 요즘의 젊은이들을 생각해 본다.
벤처기업으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고 비누 거품이 솟아나듯 부를 쌓아오던 그들은 다시 주가의 하락으로 바닥을 헤매고 있다. 나스닥이 오르고 내릴 때마다 그리고 블루칩이 곤두박질 칠 때마다 환호하고 절망한다. 하루에도 몇 수십번씩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호세처럼 끈기와 참을성을 가지고 인내하지 못한다.
스피드와 스릴과 부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이들은 인내니 참을성이니 하는 단어는 잊은지 오래인 것처럼 보인다. 비록 그들의 부가 한순간에 거품처럼 사라진다 해도 그들은 호세처럼 주춧돌부터 쌓아올려 견고한 집을 짓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벤처기업이 저마다 생명을 다하지 못하고 사라져가지만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은 닷컴 하나를 터뜨리기 위해 컴퓨터 앞을 쉽게 떠나려하지 않는다. 카지노에서 잭팟 하나 터지기를 기다리는 거나 다름없는 그 일에 그들은 혼을 빼앗기고 있다.
요즈음은 국민학교 학생들까지 학교에 가 있어야 할 시간에 PC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예삿일이 아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회는 아무런 조치도 없이 무방비 상태라는 게 더 암담하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신성함을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알릴 수 있는걸까.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인내와 참을성을 가지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호세의 좌우명이 참으로 귀하에 여겨진다.
걸음마도 배우기 전에 뜀박질부터 하려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인생에 지름길은 없다고 말해준다면 너무나 가혹한 처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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