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모 초등학교에 볼일이 있어 갔을 때였던 것 같다. 학교 복도에서 줄지어서 다음 교실로 이동하는 행렬 중에서 한국아이로 보이는 아이가 유달리 우울하고 근심스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일부러 명랑한 소리로 “Hi, ...”하고 인사를 하며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지만 한 아이는 수줍어서 고개를 돌렸고, 한 아이는 아예 화난 얼굴 그대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집에서 엄하게 자란 탓일까 아니면 아침부터 꾸중을 들었을까? 그 아이도 언어와 문화의 갈등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일까?
그날 그 학교에 갔었던 일은, 한 한국 아이와 교사 사이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불화 때문에 급기야는 여러 교사와 학부모가 미팅을 갖게까지 되었던 것이었다. 시간이 되어 나타난 Peter는 평소에 보던 천진함이란 찾아볼 수 없고 무척 불안하고 화가 나 있었다. 내가 다가가서 귀에 대고 지금 어떠냐고 물었다. 자기는 지금 무척 화가 나있다고 한다. 모두들 바보처럼 군다고, 이해도 할 줄 모르고 조그마한 일로 못살게 구는 어른들 때문에 자기는 불행하단다. 자기는 포기한단다. 그들과 아예 시도도 하기 싫단다. 아이의 표정은 단호해졌다.
미팅이 시작되기 전에 담당교사와 교장을 만났다. 이번 미팅에서 나는 아이의 감정과 의견과 인격을 인정해주어 지신의 좋은 의지를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기회를 부여하고 그러고서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기로 하겠다고 미리 방향 제시를 해두었다. 미팅에서 당연히 교사와 부모 사이의 이견이 왔다 갔다 하였고 제법 법정과 같은 분위기까지 들었다. 나는 생각대로 아이의 문화적으로 어려운 처지와 가정 안에서의 세대와 문화 차이로 갖는 심적 부담을 잘 다스려가는 도중에 있는 성장기의 아이임을 강조하며, 아이의 답답한 심정을 피력하였다.
물론 가끔 교사들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내기도 했었다. 어떻게 내 생각과 이 아이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주장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마치 이번엔 당신들이 좀 봐 줘야겠어 하는 식으로 떼를 쓰고 있었다. 아이는 속이 좀 시원했을까?
아이의 진정한 두려움과 문제는 아이 자체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모먼트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아이는 다소 얼굴이 누그러졌다. 선생님들의 표정은 달라졌다. 우리는 서로 알고 있다. 뭐라해도 알게 모르게 교사의 인종 차별이 없었다고 볼 수 있겠는가, 아이 또한 직접 대항하지 못한 소견에 선생님을 은근히 골려주고 화나게 했던 것을…
그러나 부모는 이 두 사람을 다 이해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이와 아무리 격렬한 토론에 접해도 좋은 결론에 만나지 못해도 최소한 엄마가 너를 이해한다 또는 이해하려고 무진장 노력한다는 말을 꼭 해주었으면 한다. 교사에게도 철없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그대들의 노고와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으면 한다.
영어 때문에라고 쉽게 핑계만 만들지 말고, 학교에서 오는 안내문이나 편지는 주의 깊게 보고 응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절 때가 되어 퍼붓는 선물 공세나, 나쁜 문제가 터져 다급하게 학교를 찾는 것에 앞서서 평소에 쌓아두어야 할 중요한 크레딧이요, 인격적인 관계의 시작인 것이다.
아무리 학교 생활에서 갈등이 많고 학교 밖의 유혹이 있어도 Peter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함께 노력해줄 부모를 보면서 좋은 심성과 의지를 가다듬었을 것이다. 아무리 이 학생이 잘못을 해도 부모의 집요한 관심과 이해하기 위해 보여주는 그들의 노력을 보는 교사는 또 한 번 교사의 천직으로서의 심성과 의지로 더 좋은 교육의 효과를 위해 힘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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