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곧바로 신체 불구자를 연상한다. 신체의 일부분이 없거나 손상되어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장애(障碍) 또는 일본에서는 장해(障害)라고 써 왔다. 일반적으로 이런 표현인 핸디캡(handicap)이란 단어를 쓰지만 충분치 못하다. 그 이유는 과연 정상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100미터를 몇 초에 뛰어야 정상인가? 키는 얼마나 커야 정상인가? 설령 평균치를 정하고 이에 못 미친다고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래서 기능장애(dis-able)라는 단어가 장애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한인 학부모는 자녀가 정서장애 또는 학습장애로 특수학교에 보내져야 한다면 이해할 수도 없으며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심지어는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아이에게는 필요한 것인데 외적인 판단기준으로 본다면 자녀의 장애를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잘못된 장애에 대한 편견이 스스로를 회복하기 어려운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한 때는 한국 보사부에서 혼혈아를 장애인의 범주에 넣었던 적도 있었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혼혈아가 사회적응에 어렵다고 판단한 이유였다.
장애의 극복은 재활로 귀결된다. 재활은 의료에서 시작되어 교육을 거쳐서 직업재활로 종결된다. 핸디캡이 있다면 그에 알맞는 훈련을 통해서 적합한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청각장애인은 오히려 소음이 많은 일터에서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다.
암실에서의 작업은 시각장애인에게 적합하다. 보석 가공과 같은 일은 업주들이 오히려 지체장애자들을 선호한다. 정신장애인들은 단순작업을 지루해 하지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인구의 30% 정도를 장애인으로 본다. 이제 장애인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하루에도 교통사고와 산업재해로 수많은 사람들이 장애를 입는다.
또한 65세가 되면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SSI를 주는 이유는 신체의 기능이 저하되므로 장애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장애를 규정하는 것은 일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보면 된다. 반대로 본다면 겉은 멀쩡한데(?)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사람을 오히려 장애자로 볼 수 있다. 도박에 빠져서, 게을러서,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서 일을 안하고 있다면 이런 부류가 바로 진짜(?) 기능장애자들이다.
이제 신체적인 외모와 판단으로 장애인을 특별한 부류로 보면서 비하하거나, 혹은 지나친 동정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골프, 당구, 바둑, 볼링 등 게임을 할 때 핸디를 잡아주고 게임을 하지 않는가. 자기 수준에 맞게 놓고서 서로 최선을 다해서 경쟁을 해야 승부의 묘미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체적 핸디캡은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할 뿐이지 모두가 똑같은 인간인 것이다.
이번 한인회장 선거에서도 후보자의 신체적인 약점을 공격의 빌미로 삼았다면 서글픈 일이다. 오히려 불편한 몸이지만 더 많은 노력과 집념을 투자해서 직업을 갖고 성공했다면 더 큰 박수를 받아야 한다. 또한 이것을 대다수의 한인들이 공감하고 인정했다고 본다. 장애를 결코 외적인 신체적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한 번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문의:(212)434-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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