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자못 잘 불러도 섣불리 독창회를 열지는 못하며, 어떤 악기에 깜짝 자질이 있어도 선뜻 연주회를 갖지도 못하고 무릇 춤에 신명지어도 얼추 공연회를 마련하지는 못하며, 감상할만한 그림을 그려도 고작 습작품들을 가지고 곧장 전람회를 꾸미지는 않는다 여겨진다.
누구나, 자기 분야의 어떤 작은 경연이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공모에서라도 한번쯤 시험과 평가를 받고 인정할만한 시상 하나라도 거둔 다음에 감히 음악가나 무용가나 화가의 행세를 한다고 믿어진다.
그러나 Desktop Publishing으로 편리해진 근래의 출판계만은 예외인 듯 싶다. 무더기로 쏟아져나오는 것을 보면 아무 표준도 없어보인다. 그저 몇천불만 주면 무엇이나 찍어주는 출판사가 수두룩하다는 말도 사실인 모양이다.
언론의 자유와 함께 출판의 자유가 누구에게나 있고 자비로 베푸는 출판기념회에서 들려지는데 무슨 상관이람 따지고 들면 응답이 궁색해지리라고 지레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잖아도 넘쳐나는 출판들의 홍수를 더욱 부추기고 독자들의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시키는 무모한 짓은 삼가해야 되지 않을런지. 큰 자성이 요구되지 않을런지.
지난번에도 마음의 영양과 샘물을 갈망하면서 현지동포가 쓴 몇권을 읽었다. 맨 처음에 읽은 수필집은 자기도취증의 발로에서 누설하는 일지로 동키호테적 과대망상적 주책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누구에게 남용당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 다음 두툼한 시집에서는 나의 무딘 감각, 둔한 감성, 느린 심상의 탓일지도 모르지만 무미한 지루함이 감동을 대신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만지작거렸어도 갈망하는 신선한 충격이나 이미지, 도전적인 직관이나 산뜻한 표현에 반향하여 선뜻해지는 감각은 한번도 느끼지 못했다. 아쉽고 실망스러웠다.
또 한 권의 자서전은 감상적인 지난날들의 추억과 습관적인 일상사의 회고록 속에 추켜올린 자신의 족보와 시댁의 가문, 남편과 자식들의 자랑, 대궐같은 집에서 파출부를 못부리는 생활고, 자식들의 사립학교 비용의 고충, 골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백화점의 세일들을 쫓아다니는 몸살, 잦은 외식으로 힘든 다이어트 등의 재료에다 필자만 독점한듯 자랑하는 신앙심, 모성애, 애향심, 애족심, 애국심을 선동하는 양념을 뿌린 요리였다. 입맛 쓰고 우롱당한 기분이었다.
그런 작품들을 왜 초장에 던져버리지 않고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음은 오히려 독자의 아둔과 미욱이라고 나무랄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번 손에 잡은 일이나 일단 시작한 것이면 아무래도 끝장을 보아야 속이 시원해지는 약점이나 고집을 지녔음을 상기한다면 이해가 되지 않을런지.
하여간 인쇄된 모든 간행물에는 곧 출판기념할 가치가 생기는지, 그 다음에는 그 필자가 곧 작가가 되는지 사실 궁금하다.
사실 여기 저기에서, 보이기 위한 일기장이나 자서전, 번뇌와 숙고 없는 회고록이나 수상록, 맛과 향기 없는 수필집이나 소설, 겉만 핥는 여행기와 소감, 서정성과 이미지 빈혈 앓는 시집이나 시화집, 원작에 먹칠한 번역 따위들이, 마치 거위의 황금알이나 되는 양 퐁퐁 쏟아져 나온다.북 치고 징 치면서.
아무런들 미운 오리알 하나도 못까내는 주제에, 쓰는 일이 각고임을 아는 터에, 하나같이 숨가쁘고 외로운 이민생활에서 그래도 힘들여 부르는 노래들일진데 음치 자신의 불모지나 부끄러워하면서, 모두에게 온통 축하와 박수를 보냄이 마땅하고, 한층 우아할텐데, 왈부 왈시함은 빤히 질시와 심술의 추태라고 누가 펄쩍 뛴다면, 미안해서 뜨거워진 얼굴로 사과라도 하겠지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