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란 묘한 구석이 있다.
경기 도중 격렬한 육탄전이 발생하는 스포츠일수록 라이벌과 진한 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네트를 사이에 두어 몸과 몸의 충돌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종목의 선수들이 오히려 상대 플레이어와 별로 가깝지 않다. 개인 종목인 복싱, 레슬링, 유도, 태권도 등은 물론이고 단체 스포츠인 럭비, 미식축구의 경기장에서는 종료 휘슬이 불면 상대방을 진정으로 감싸안는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된다. 같은 나라 선수끼리의 경기는 물론이고 국제 대회서도 마찬가지 광경이 빚어진다.
물론 예외는 있다. 투기종목 경기가 끝난 뒤 곧장 싸움으로 발전하는 예도 있고 몸뚱이가 격돌하지 않는 종목의 선수들이 한층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 역시 많다. 육탄 스포츠의 선수들이 더욱 친해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이같은 현상은 서로의 거친 호흡을 가까이서 느끼고 몸을 부딪히며 전해오는 스킨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해석해본다.
육탄 종목 선수끼리 뜨거운 정을 나눈 대표적 사례로 WBC 플라이급 전 세계 챔피언 박찬희와 도전자였던 구티 에스파다스(멕시코)에게서 발견한다. 1977년 7월 프로로 전향한 박찬희는 1년 반만에 ‘링위의 대학교수’라던 백전노장 미겔 칸토를 15회 판정으로 누르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
79년 9월 서울에서 입장이 바뀐 칸토를 맞아 무승부로 2차 방어에 성공했지만 ‘펀치력 빈곤, 결정타 부재’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때문에 79년 12월 강펀치의 소유자 구티 에스파다스(멕시코)와의 타이틀전을 앞두고는 KO패 아니면 운이 좋아야 판정패할 것으로 예상했다. 에스파다스는 박찬희 본인이 우상으로 여겼을 만큼 거의 완벽한 복서였다.
박찬희가 방어전을 갖기 전에 에스파다스의 경기를 TV로 보았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세계 상위 랭커를 간단하게 KO로 누르는 것을 목격, 정말 대단한 선수라고 인정치 않을 수 없었다. 특히 KO 카운트가 끝난 뒤 상대방을 찾아 위로하며 눈물까지 흘린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참하게 쓰러진 상대에 대한 연민의 눈물로 기억한다. 결코 악어의 눈물은 아닐 것이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같은 도전자였기에 박찬희가 패하리라 우려했으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1회 한차례 다운당한 뒤 2라운드 들어 현란한 연타 공격으로 에스파다스를 캔버스에 눕혔다.
그러나 사나이끼리 최선을 다해 겨룬 뒤 진한 우정을 나눈 것이 더욱 감동적이었다. 승리한 박찬희가 에스파다스를 초청, 한 술집에서 밤새도록 통음한 것이다. 둘은 대화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다. 토막 영어와 한국어, 스페인어가 마구 사용됐지만 정확하게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둘은 기분좋게 마셨고 상대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했다. 이같이 승부에 흔쾌히 승복하고 아름다운 인간 관계를 맺는 모습을 뉴욕에서 보고 싶다.
평통위원 선정을 둘러싸고 거의 매번 잡음이 일어난다고 한다. 선정하기 전에는 물론이고 인선을 마친 뒤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라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나는 평통위원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서도 총영사관이나 서울의 평통사무처, 여당 정치인, 심지어 청와대에까지 줄을 대려고 하는 추태가 빚어지곤 했다 한다.
이번에는 제발 이런 구태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치 양보없는 다툼을 벌이고도 경기가 끝나면 상대를 위로하고 존중할 줄 아는 육탄 스포츠맨의 매너가 발휘되었으면 한다. 젊은 선수들이 그러할진대 소위 식견과 사회적 지위가 남다르다는 이들이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해서야 나이값도 못한다는 비난을 살 수 밖에 없다.
평통위원 인선작업 기구나 인사들 역시 누가 봐도 수긍할만한 작품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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