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철이 다가왔다. 요즘은 덜하지만 몇년 전만 해도 봄철이 되면 신문에 고사리와 관련된 기사가 자주 등장하곤 했다. 고사리를 따다 체포되었다든지 경찰이 고속도로상에서 동양인들의 차를 보면 세우고 불심검문을 한다든지 했다. 적지않은 분들이 많은 벌금을 물었다.
고사리를 채취해 가는 것을 본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야생식물을 멸종시키려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요즘 LA쪽에선 어느 정도 채취는 합법이라고 한다. 사실 미국도 식민시대에는 고사리를 먹었다. <먹을 수 있는 야생식물>이라는 책에 고사리를 브래큰훤, 이글훤, 휘들헤드 등으로 부른다. 봄에는 어린 순을 먹고 가을에는 뿌리를 먹는데 순은 삶아 먹고 뿌리는 볶아 먹는다고 했다.
우리도 고사리와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이민온지 얼마 안된 장모님은 우리집에서 답답한 겨울을 지냈다. 봄철이 되니 나물을 하러 갔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셨다. 캣츠킬에 사는 친구가 자기집 근처에 나물도 많고 고사리도 많으니 놀러오라는 것이다. 날을 잡아 장모님과 장모님의 친구분을 모시고 피크닉을 삼아 고사리를 따러 갔었다. 두분 노인네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즐거워하며 계속 고사리를 땄다. 점심 후에는 큰 자루 하나씩을 옆에 차더니 좀 멀리 갈터이니 너희들은 여기서 놀고 있으라 하며 산으로 올라갔다.
오후 2시에 떠난 분들이 5시가 되어도 소식이 없었다. 불안감이 들었지만 해가 아직 중천에 떠있기에 계속 기다렸다. 7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게 되자 경찰에 신고하고 불안한 가운데 어쩔줄 몰랐다.
결국 밤 9시가 되어 발견되었는데 출발지에서 40리나 떨어진 외딴 곳에 사는 미국인에 의해 기진맥진해 쓰러져 있는 두 할머니가 발견된 것이다. 죽을뻔한 그 와중에서도 두 분의 손에는 고사리가 가득한 자루가 꽉 쥐어져 있었다.
나는 요즘 요리에 관한 서적을 뒤적이다가 이러한 고사리 소동이 유서가 깊은 것을 발견하였다. 마크밀론이라는 영국사람이 <한국의 맛>이라는 책을 썼는데 여행기 겸 한국요리를 소개한 책이다. 그의 외할머니가 한국인인데 하와이 이민 1세였다. 그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기술한 것이다.
그 외할머니는 하와이에 살다 LA로 이주하였고 봄철만 되면 나물을 하러 다녔던 60년 전 어느 봄날 그 할머니와 다른 세분의 할머니가 ‘빅베어 레이크’라는 산으로 고사리를 따러 갔다. 날씨도 쾌적하여 고사리 사냥에는 최적이었다. 그들은 함께 몰려다니는 것 보다 서로 흩어져 다니면 보다 효과적이라 생각하고 뿔뿔이 흩어져 고사리를 채취했다. 황혼무렵에 약속장소에 고사리 가득한 자루 하나씩을 들고 하나씩 모여 들었는데 그 중 세숙이라는 할머니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오늘날까지 그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값진 대가를 지불한 그 고사리를 어쨌느냐고 물었다. 물론 먹었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너무 놀랐다는 것이다. 실종된 세숙이라는 그 할머니는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자기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도 장모님께서 그 때 그 고사리를 따던 때를 잊지 못하신다.
지나간 것은 더 아름다운 것인가? 죽을뻔한 그 고난은 잊어버리고 즐거운 추억으로만 기억되는 것이다. 미국생활에서 가장 즐거운 때라는 것이다.
요즘은 내 어머니와 합세하여 고사리와 나물 타령이다. 길을 가다가도 이것은 먹는 풀이다 저것도 먹는 풀이다 이것은 버들취이고 저것은 원추리이다 하시며 그분들 눈에는 모든 것이 먹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올해도 한 번 모시고 고사리 따러 가야겠는데 안전을 생각해 워키토키라도 하나씩 들려드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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