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강자구(스토니브룩 한국학회 고문)
얼마 전의 일이다. 저녁 어둠이 깔리는 때 내가 차를 서서히 몰고 골목길을 나오는데 앞에 중년의 미국여인이 조그마한 그녀의 애견을 데리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개가 내 차를 향하여 달려들었다.
내가 급정거를 하니까 그 개는 내 차 앞 범퍼에 머리를 받았고 아프다는 듯이 잠시동안 깨깽 깨갱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강아지는 괜찮은 모양이었다. 그 여인이 개를 안고 너무나도 안타까워하기에 차에서 내려 “미안하게 됐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그녀가 “당신 책임이 아니다”라고 손을 내저어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애통해 하는 그녀와 그녀의 품안에 있는 개를 뒤에 두고 차를 몰았다.
미국에서는 저녁이나 새벽녘에 흔히 보는 일이다. 미국여인이 그녀의 애견을 운동시키는 일 말이다.
얼마 전 우리집 둘째딸이 사위(둘다 의사들인데 2세들이 아직 없다)가 고양이를 4년째인가 기르는데 큰 고양이가 당뇨병에 걸려 조석으로 ‘인슐린’을 놓아주고 식이요법도 시키고 운동도 시킨단다. 얼마 전에 위스콘신주에 사는 내 친구 부부가 애견을 하나 키우는데 재미가 그렇게 아기자기 하다고 나보고 한번 ‘개’를 길러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인간관계가 소원하다. 병원에서 주최하는 칵테일 파티에 가 봐도 술 한잔씩 들고 서서 이야기하는데 전혀 감정에도 없는 이야기만 한다. 날씨가 좋았다던지, 어디에 여행을 가서 무슨 요리를 먹었다든지... 하는 아무 의미가 없는 말들이다.
미국문화는 인간 소원 문화다. 한국사람들은 인간적이고 인간관계 문화다.
내가 YMCA 기금모금 골프 토너먼트에서 모르는 사람과 한 썸이 되어서 치게 됐다. 서로 만나 악수하고 나는 누구라고, 서로 인사하고 고향이 어디냐? 본관이 어디시냐? 누구를 아느냐? 이렇게 인간관계를 맺는다. 물론 미국의 개인주의가 좋은 점도 있다. 쓸데없는데 이리 얽히고 저리 얼키는 인간관계에 인사를 해야 하는데 진절머리가 나서 한국에 돌아가서 도저히 못살겠다고 미국으로 도로 돌아온 사람도 간혹 있다.
미국에 살려면 미국식으로 사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가 바쁘기 때문에 자기 혼자의 시간을 내야 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친구들은 그 시간에 일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럴 때 개나 고양이와 정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대가족제도 속에 사는 사람은 항상 집에 오면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계실 경우 개나 고양이의 존재의미가 별로 없지만…
미국사람들은 인간과 인간관계가 소원하기 때문에 서로 정을 주고 받고 다정하게 살아가는 문화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나 고양이, 심지어 뱀, 호랑이 등과 같은 인간과 같이 살지 못하는 맹수들까지도 정을 주고 살려야 한다. 그렇지만 이웃이 싫어하고 당국이 이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잘 되지 않는다.
모든 생물은 서로 정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 동물 식물도 그렇다. 인간처럼 대뇌피질이 발달된 영장류는 더욱 그렇다.
정을 모르는 美人은 차다. 석화(石花)일 뿐이다. 정의 시작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생기고 연습하고 배워서 꼭 같은 정감을 부모, 형제,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 친척 등에로 확대해 나간다.
정은 인간이 관계를 바르게 맺는데 필요한 밑바닥 주춧돌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는 우리가 해야 하고 해서는 안되는 것을 가르치고 규정지어 우리 머리에 못박혀 있는 도덕심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커서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직장의 상사에게 인사하고 윗사람 대접하며 아랫사람에게 인간적으로 대하고 어려울 때 도와주게 된다. 말하자면 바른 인간관계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바른 인간관계는 부부관계가 신뢰하고 건전한데서 오고 이 사이에 난 자식들, 형제, 친척, 친구관계도 자연히 건전한 인간관계가 바로 선다. 이렇게 되면 국민은 위정자를 신뢰하고 따르며 환자는 의사를 믿고 치료를 받을 수 있고 학생들은 선생님을 신뢰하고 존경하며 배우고 따르게 된다.
모든 인간관계는 부부관계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정은 어머니에게서 더 많이, 그리고 도덕심은 아버지에게서 자연적으로 우리 머리에 못박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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