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런던에 갔을 때, 내 눈에 제일 먼저 띈 것은 하이드파크에서 진행되고 있던 설치물들이었다. 흰색 텐트들과 설치물들이 대규모로 준비되고 있었다. ‘무슨 행사가 있나 보다. 그래도 규모가 참 엄청나다’ 하는 정도로만 추측하면서 별다른 생각없이 그 앞을 지나다녔다.
우리 일행이 옥스포드와 셰익스피어 생가 관광을 떠나던 버스 안에서였다.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오늘과 내일 이틀간 하이드파크에서 일본축제가 열립니다. 일본 문화를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우리 일정이 끝난 뒤에 한번 가보세요” 했다.
솔직히 놀랍기도 하고, 기분이 뒤틀리기도 하고, 참 묘했다. 우리 세대는 일본에 대한 적대 감정을 머리 속 깊이 교육받았기 때문에 일본 이야기만 나오면 머리털이 곤두서곤 하는데, 런던의 관광버스 안에서 일본축제 이야기를 들으니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 날 저녁 호기심에서 하이드파크에 가 보았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각이라 대부분 파장 분위기였는데, 남은 것이라고는 먹거리 쪽이었다. 스시며 우동, 떡, 뎀뿌라, 사시미 등은 대부분 매진되었고, 음식이 남아 있는 집은 몇 군데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중의 하나는 한국음식을 팔고 있었다. 런던에 있는 한 한국식당이 참가해 김치와 깍두기, 오이소배기 등을 팔면서 주먹밥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김치 박스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일본 음식은 동나는 판에, 하나뿐인 한국음식 코너는 음식이 그대로 쌓여 있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도 내 마음을 또 한번 울컥 하게 했다.
팜플렛을 보니 일본 축제는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뿐만 아니라 영국 전국을 돌면서 내년 6월까지 계속되는 상설 축제였다. 정말이지 가슴이 쓰라리도록 부러웠다.
어디 축제 뿐인가? 일본의 저력은 노벨상 수상에서도 드러난다. 물론 우리나라도 얼마 전 턱걸이로 간신히 수상국 대열에 들어갔지만, 노벨상 수상자를 9명이나 낸 일본과는 비교가 안된다. 작년에도 일본은 화학상 부분에서 수상자를 냈고, 물리학 화학 생리학 등 과학 분야에서만 벌써 6명째라는 것이다.
내가 지치지도 않고 과거에만 매달려 일본을 미워하고 분통을 터뜨리는 동안, 일본은 의기양양하게 경제대국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자존심을 키워가고 있었다.
내가 존경하는 한 신앙인은 그가 쓴 기도시 ‘오늘은 내일을 향한 열정’ 에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세월의 비바람이 거칠더라도 도리어 온유하고/ 강팍한 인심에 부대끼어도 사랑을 잃지 않으며/ 사막이 된 영혼에도 생명의 우물을 파내려가는… 이들이 되게 하소서 … / … 어제는 오늘을 잉태한 은총이며 / 오늘은 내일을 향한 희망의 열정이고 / 내일은 그 희망의 열매를 나눌 축복의 자리가 되게 하소서.’
나는 왜 내 안에 적대적으로 들어앉아 있는 일본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직도 저들만 보면 아니꼽고 부러운가. 이건 이제 버려야 할 유물이 아닌가. 내가 할 일은 그들이 우리에게 준 상처를 극복하고 오히려 더 큰 품으로 그들을 껴안는 일이 아닐까. 그럴 때 우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새로운 나이테를 잉태하게 되리라.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용솟음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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