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하명훈(뉴욕지구 개업의협회 회장)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의사가 사용하는 청진기와 한의사가 손목을 잡아 맥을 가늠하는 진찰에 상당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 호기심은 의심스러움에 가까운 것이라 하겠다. 과연 청진기나 진맥을 통하여 무엇을 또 어느 정도의 신빙성 있는 건강정보 즉 진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일까 생각하곤 했다.
지난달 한국가는 길에 북경을 구경할 기회를 갖게 되었으며 현대식 고층건물 바로 옆에 누렇게 익어가는 밀밭이 아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어 인상적이며 그 밀밭은 일순간에 나를 밀살이 해서 먹던 어린 시절로, 고층건물들은 나를 현실로 되돌려 놓아 나는 한 반세기 세월을 넘나들 수 있었다.
유적지 어디를 가도 용의 그림이나 조각, 혹은 용이라 쓴 글자를 쉽게 볼 수 있었고 고속도로 공사장이나 건물 공사장이 많아 오랜 세월 잠자던 용이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일행 20여명은 북경 중의학 진료소의 외국인을 위한 외래진료실로 안내되었고(한국에서는 한의학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중의학이라 명명함) 금년 여든 둘의 우리 한인(조선족) 출신 할머니 교수님의 중의학 진료소 소개와 오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의학과 중국대륙에 서식하는 십만종 이상의 약초에서 엄선된 것만이 약재로 쓰기 때문에 그 약효가 세계 제일이며 급성질병은 양의학이 담당하고 본 중의학 진료소는 만성질환, 특히 성인병 진료를 담당한다고 했다. 입만 열면 만병통치라든가 혹은 현대의학이 근치할 수 없는 질병들만 기막히게도 골라 황제경이나 동의보감에 의거한 비법이 있다고 선전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상당히 공평한 발언이리라.
노교수께서는 우리 일행을 위한 무료 진맥(그것도 북경에서 최고 권위있는 전문 교수 세 명이)을 제의해서 나는 어린 시절 호기심을 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공짜가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닌 줄 알긴 하지만.
나는 세 명의 교수가 우리 일행들을 진맥하는 한 가운데 서서 열심히 관찰하고 조선족 통역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었다. 일행 중 연세가 칠십이 되어보이는 노인 한분은 여행중 누구보다 발빠르게 거동하시어 아주 건강하게 보였는데 진맥 결과 부정맥을 지적했고, 노신사께서는 미국에서 심장내과(양의)에게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아 하루 한 알의 아스피린을 복용중이며 매일 조깅을 한다고 하니 중국인 교수는 자기는 혈관과 심장전문의이며 노신사의 ‘기’가 허약하니 부정맥과 기 치료 처방 약을 권했다. ‘기’가 허약해도 아주 건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맥박이 규칙 혹은 불규칙한 것은 의사가 아니어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쪽 팔목 동맥 위에 세 손가락 끝을 올려놓은 중의교수는 내 간에 열이 있고 그로 인해 신(신장)의 ‘기’가 허약하다. ‘기’는 기운의 흐름 즉 혈행이라고 했다.
내 신장의 기능은 전혀 이상이 없고 성기능 역시 내 나이에 걸맞게 유지하고 있어 신의 ‘기’가 허약하다니 무슨말인가 하고 반문하니 현재는 이상없지만 3~4개월 후에 발병할 것이니 지금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한자로 처방을 써주었다.
요즘에는 내과의사(양의)들도 청진기에 의존도가 상당히 감소되고 있으며 이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진단학과 그 기구 및 기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뭇 사람들이 반만년, 이천년, 오백년 혹은 오십년 전의 방식에 매달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어제의 의학이 낡은 것이 되는 세상이다. 몸에 좋다는 것들, 어느 병에는 무엇이 좋다는 것을 특효약으로 생각하다 시간을 놓치지 말자.
키 크는 약, 당뇨병 완전치료약, 만병치료 침대, 머리 좋아지는 약, 이런 약들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런 광고주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주는 약은 왜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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