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화제
▶ 뉴욕 WTC 테러 참사로 마천루 두려움 확산
지난 11일 발생한 테러참사는 미국사회 전반에 엄청난 충격파를 몰고 왔다.
이 사건은 미국 시민들에게 비행기 탑승에 대한 공포 못지 않게 고층건물 공포심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가 세계무역센터(WTC)뿐 아니라 마천루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부심과 신뢰까지 무너뜨렸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대도시들에는 각각 그 도시를 상징하는 고층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제 시야에서 사라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시카고에는 미국 최고층의 시어스 타워,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트랜스 아메리카 피라미드 빌딩 등이 그 대표적 케이스다. 이 기념비적 고층건물들은 그 도시의 마천루를 규정하는 상징이자, 커피 잔의 실루엣으로 사용될 만큼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세계무역센터 테러참사와 더불어 초고층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념은 매우 극적으로 바뀌었다. 고층건물이 더 이상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초고층 빌딩들은 건축학적 경이이자 경제적 힘의 상징으로 위용을 떨쳤다. 그러나 이제 미국민들 가운데서는, TV화면을 통해 거대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참하게 붕괴되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한 후부터, 초고층 빌딩을 기피하는 현상마저 생기고 있다.
기업체 세입자들은 초고층 빌딩 입주를 재고하게 되었고, 회사 직원들 역시 전망은 좋지만 안심이 안 되는 고층건물 사무실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번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 내 많은 초고층 빌딩들은 또 다른 테러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건물을 폐쇄했었다.
이에 대해, 부동산 자문그룹 언스트 & 영의 마크 스미스는 이렇게 진단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기념비적 상징물이 손상되면 그에 따라 사람들의 심리도 타격을 받는다"스미스의 회사는 그동안 뉴욕 항만청을 상대로 세계무역센터 일대 부지사용에 대한 상담을 해왔다. 그는 향후 항만청들이 자문을 구해올 경우, 자신의 대답은 간단명료할 것이라고 귀띔한다.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보다 작고 단순한 건물들을 짓도록 하라"
다시 말해, 사람들의 눈에 튀어 보이지 않는 수수한 건물을 지으라는 것이다.
최근 USA 투데이/CNN/갤럽이 합동 실시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65%는 여전히 마천루를 선호했지만, 나머지 35%는 이제 마천루에서 일하기가 싫다고 답했다. 이같은 결과는 향후 부동산 건설업계에 중대한 문제를 시사한다. 즉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핑화’ 시대는 끝나거나 일시 정지됐는가" 하는 물음이다. 유명한 도시 재개발업자 트럼프는 최근까지도 뉴욕과 시카고를 중심으로 대규모 건축사업들을 추진해 왔다.
이에 대해 저명한 건축가 스캇 존슨은 "고층건물 건축열기는 당분간 냉각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예측한다. 이런 상황은 곧 바로 경제에 커다란 여파를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국 경제에서 마천루들은 거대한 부를 창출하는 통로이다.
미전역에 있는 상업용 부동산 가치는 물경 3조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지난해에도 4%의 성장세를 유지했다. 그 중에서도 지난 9월11일 테러참사로 파괴된 맨해턴 다운타운 일대 부동산 가치는 최소 41억달러 이상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전문가들은 대도시 마천루의 운명에 대해 그릇된 예측을 거듭해 왔다. 한때는 지진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와 LA에 고층건물들이 더 이상 건축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새로운 건축기술이 도입되기 이전의 예기였다. 발달된 현대 공법에 힘입어 지진 내구성 고층건물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기술의 눈부신 발달 덕분에, 대도시의 거대한 고층빌딩 건설 붐이 사양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그런 예측에도 불구하고 고층건물들의 인기는 건재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 비로소 그같은 예측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다만 고층건물 시대의 종언을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이 자연재해나 통신기술이 아니라, 테러와 그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심으로 바뀐 것뿐이다.
반면 이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유명 부동산회사 그럽 &엘리스의 마이클 버니는 예측한다.
"이번 사태가 단기적으로는 마천루 기피증을 유발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사람들은 다시 마천루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버니는 그 좋은 예로 1980년, 라스베가스에서 발생한 MGM-그랜드호텔 화재사고를 언급한다. 당시 MGM 화재사고로 87명이 사망한 이후, 한동안 라스베가스에서는 땅바닥을 기는 건물들만 신축되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 라스베가스에는 또 다시 고층 호텔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건축가들은 이번 테러참사가 향후 신축될 고층건물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것만은 분명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대해 북미주 최대 건축회사 중 하나인 트리젝한 사의 안토니오 비스몬트 부사장은 "고층건물의 진입시설 및 엘리베이터 접근시설이 크게 변할 것이다"라고 예측한다.
고층건물들의 몇몇 표준적 사양들도 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예를 들면 향후 건축될 고층건물들의 계단 넓이는 기존 계단 사이즈의 두배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 부동산 전문가 수잔 윌슨은 "이것은 간단한 산수문제다. 계단이 두배 넓으면, 비상사태 때 사람들이 두배나 빠르게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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