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상을 접하면서 불현듯 오래 전 읽었던 한 소설이 머리를 스쳐갔다. 소설의 제목과 작가는 잊었지만 그 내용이 워낙 엉뚱하고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소설속 주인공은 어느 날 술자리에서 우연히 한 젊은이를 만난다. 그 젊은이는 이야기를 나누다 한국의 각종 병폐를 근본적으로 치유키 위해 어처구니없지만, 나름대로 논리를 갖춘 주장을 편다. 한반도 땅덩어리를 송두리째 팔고 매각 대금은 국민들이 골고루 나눠 가진 뒤 각자 원하는 나라로 뿔뿔이 흩어지자는 것이다.
청년은 한국인들이 국적없이 수백년간 외국을 떠돌면서 갖은 구박과 설움을 당해야 나라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제정신도 차리게 된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러다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한인들이 단합해 한반도를 다시 사들여 나라를 새롭고 바르게 세워야한다고 역설한다. 청년은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밝힌다.
주인공은 처음엔 이를 단순한 궤변이라 여겨 그냥 넘겨 버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청년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자신도 조금씩 공감하게 된다. 소설은 이 청년이 어느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한반도 매각’ 서명 운동에 참여하는 국민이 늘어나는 것에 불안을 느낀 어느 세력이 청년의 증발에 관여했음을 은근히 암시하면서.
이 소설을 쓴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있을법한 허구’를 가볍게 독자들에게 던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등 전반에 걸친 탈법과 비리 등을 고발하고 비웃고 비틀기 위한 수단으로 이같은 소설을 지었으리라고 나름대로 분석한다. 또한 자신을 포함한 보통 사람들의 울분을 발산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갑자기 이 소설이 떠오른 것은 한국의 현실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고 속을 끓게 만들기 때문이다.
G&G를 둘러싼 광범위한 추문, 현직 장관의 과거 재산 불리기 의혹, 정치인의 강압적 월권행위 등은 한국을 가히 ‘시궁창 공화국’이라 정의해도 항변할 수 없게 한다. G&G 이용호 회장의 뒤에 과연 정부 여당의 실세가 있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한국 최고 파워엘리트 집단이란 검찰의 고위 인사들이 줄지어 서있었음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말썽이 된 이 회장 봐주기 수사에 검찰 지청장과 고검장은 서로 책임을 미루는가 하면 같은 조직으로부터 조사받는 불명예를 당하고 있다. 현직 검찰총장마저도 동생이 한때 이 회사에 몸담았던 사실로 인해 진흙탕물을 홈빡 뒤집어 섰다. 경찰도 빠질세라 고위 간부가 추문의 한복판에 있다.
건설교통부 장관의 과거 재산 증식은 누가 봐도 의혹을 가질만하다. 이를 해명하는 말이 오히려 실소를 머금게 한다. 동생이 근무한 무명의 회사가 엄청나게 성장하는데 자신의 지위가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변명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한 야당 의원은 노량진 수산시장을 강압적으로 차지하려다 들통나 여당에게는 반격 기회를 제공하면서 자신도 망신살을 사고 있다.
이같은 부패와 불법과 비상식과 뻔뻔함과 무책임과 철판 배짱이 난무하는 나라는 “홧김에 무엇 한다”고 외국에 팔아버리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죄없는, 평범한 국민들에게 나라 팔아 생긴 돈을 나눠주고 각자 살고 싶은 나라로 떠나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하고 공상을 해보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홧김’의 생각, 소설 속의 내용은 실현될 수 도 없고 실현돼서도 안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소주나 한잔 하 면서 실컷 씹기만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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