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시케는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부러워할만한 여성이다. 사랑의 신 에로스가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명을 거역하면서까지 사랑한 여성이 프시케(Psyche, 정신·마음)이다.
에로스(큐피드)는 보통 통통한 아기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그 자신이 사랑에 빠질 때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이 된다. 그가 인간의 딸인 프시케에 반해서 화려한 궁전에서 살림을 차린다.
프시케는 그곳에서 여왕같은 생활을 하지만 그 궁전은 이상한 궁전이었다. 시중을 드는 시종들, 악사들, 조리사들 모두 목소리만 들릴뿐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신랑이 밤중에만 왔다가 날새기 전에 가버리기 때문에 신랑의 얼굴을 볼수가 없다.
“신랑은 어떤 모습일까”- 행복에 겨운 생활을 하던 프시케의 마음속에 호기심이 싹트고 그것이 의심으로 바뀐다. “네 신랑은 너를 살찌워 잡아먹으려는 괴물이라더라”는 언니들의 꼬드김도 있고해서, 어느날 프시케는 한밤중에 등잔불을 켜고 잠든 신랑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 순간 눈을 뜬 에로스는 그대로 날아가 버리고, 그와 동시에 화려한 궁전도 허허벌판으로 바뀐다.
마음(프시케) 속에 의심이 들어차면 사랑(에로스)은 떠나게 되어있다는 것이 신화연구가의 해석이다.
9월11일 테러사건과 아프간 전쟁은 우리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대단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믿음이 아니라면 그것은 용기일 것이다.
비행기를 탄다는 행위는 비행기가 사고없이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 것이고, 고층건물에 올라가는 것은 건물이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이들의 대학교육 적금을 들고, 은퇴연금을 들고, 큰 집을 사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녹초가 되도록 일해 투자하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는 믿음을 토대로 한 것이다.
테러의 충격으로 그런 믿음에 금이 가고, 안전성과 미래에 대해 의심이 생기자 사회가 거대한 불안의 늪으로 바뀌고 있다. 마음속에 의심이 들어차니 삶이 주던 많은 즐거움들이 빛을 잃어 버렸다. 비행기 승객이 줄고, 샤핑몰이 한산해지고, 부동산 경기가 주춤해지면서 심리적 불안이 경제적 불안으로 이어지더니, 탄저병 환자가 발생하고부터는 불안이 히스테리컬한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며칠전 뉴저지 트렌튼에서는 한 우편물에서 흰가루가 발견되면서 빌딩 전체가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피닉스의 공항에서는 방문객이 보안검사대를 지날 때 신발까지 벗게 하고 있다. 또 덴버 같은 도시는 연말 제야행사를 일찌감치 취소해 버렸다.
너무 호들갑스런 반응을 경멸하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도 “테러가 또 터지기는 터질거야. 어디에서 터지느냐가 문제이지. 그게 생화학 테러라면 어떻게 대비를 해야하나…”하는 불안이 마음 저변에 기분 나쁘게 깔려있다.
게다가 하루간격으로, 연방수사국이 ‘수일내 또다른 테러 위험성’을 경고하고 뉴욕의 방송사에 탄저균 우편물이 우송된 것이 확인되고 있으니, “움츠러들지 말고 삶을 즐기라”는 대통령의 충고로 불안을 지우기에는 안전에 대한 의심이 너무 깊어졌다.
그렇다면 테러사건이 밥먹듯 일어나는 지역 주민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모탈 컴뱃’ ‘트루 라이스’ 같은 영화를 제작한 래리 카사노프가 영화촬영차 이스라엘에 가서 경험한 일을 며칠전 USA 투데이에 기고했다.
잘잘못을 떠나서 이스라엘 국민은 50여년을 테러에 시달려온 테러에 관한한 베테란들. 그들은 테러가 터진 그날 저녁에도 모여서 파티하고, 극장가고, 바다에 나가 수영을 하며 전혀 동요없는 생활을 하더라고 했다.
“여기서 10분이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인데 뭘 그러세요. 인생은 짧아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최대한 즐기며 살아야지요”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자세라고 그는 썼다.
테러와의 전쟁은 한두달에 끝날 일이 아니다. 안전에 신경을 쓰면서도 불안에 삶을 지배당하지 않는 기술을 터득해야 하겠다. 마음에 의심이 깃들자 사랑도, 화려한 궁전도, 그 속에서의 행복도 다 잃어버린 프시케를 생각하자. 불안은 마음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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