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한국 특히 경북 동해안 지방에서는 과메기가 한창 소주 안주로 등장할 때다. 과메기란 갓 잡은 꽁치를 섭씨 영하 10도로 얼렸다 한겨울 바깥에서 냉동과 해동을 거듭해 말린 것이다. 지금은 꽁치로 만든 것을 과메기라 부르지만 본래는 청어가 원재료다.
과메기란 이름도 사실은 ‘말린 청어’의 한자어인 ‘관목’(貫目)에서 나왔다. 포항 사람들은 ‘목’을 사투리로 ‘메기’(혹은 메가지)라고 한다. 한자어 ‘관’에다 ‘목’의 이 지방 방언 ‘메기’를 붙여 ‘관메기’라 불러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ㄴ’이 탈락, 과메기로 정착했다고 한다.
청어는 경북 영일만 근해에서 가장 많이 잡히던 어종이었다. 한때는 너무 많이 포획돼 사람들이 질리도록 먹고도 남아 가축 사료로 사용될 정도였다. 어떻게 하면 사료로 쓰거나 버리지 않을까 하고 머리를 짜낸 끝에 찾아낸 조리, 보관법의 결과가 바로 과메기다. 그러나 1940년대 이후부터 이 해역에서 청어가 제대로 잡히지 않자 꽁치가 대타로 나서게 됐다.
꽁치 과메기는 고단백 식품으로 불포화 지방산인 EPA와 DHA 함량이 높아 혈관 확장 작용등 성인병 예방에 뛰어나다. 맛 또한 좋다. 뼈와 껍질을 발라낸 과메기를 김, 물미역 등과 함께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소주 안주로는 최상이다. 꽁치는 또한 회감으로도 일품이다. 쉽게 상하므로 대도시에서는 맛보기 힘들고 바닷가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게 단점이긴 하나 이같은 단점 때문에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물론 과메기나 회는 평소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보통의 꽁치는 서민들이 싸고 손쉽게 구해 먹을 수 있는,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다. 적당하게 소금으로 간한 꽁치 구이는 값도 쌀 뿐 아니라 맛도 뛰어나다. 밥 반찬은 물론 포장마차의 메뉴로도 제격이다. 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남자치고 꽁치에 대한 추억을 갖지 않은 이는 아마 드물 것이다. 군대 부식 가운데 가장 맛있고 고급스러웠던 것을 치라면 통조림 꽁치였다. 최소한 50대 이후 남자에게는 통조림 꽁치가 최상급 먹거리로 남아 있다.
이처럼 서민들이 즐겨 먹는 꽁치가 앞으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어질지도 모르게 됐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밥상에 올라왔던 꽁치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남쿠릴산(産)이 대부분이다. 물론 경북 연근해에서 잡힌 것도 있긴 하나 연안 어장의 자원 고갈로 그 수량은 소수에 불과했다. 때문에 한국 어선들은 남쿠릴 열도에 나가 꽁치들을 잡아 국내 소비량의 상당 부분을 대어왔다. 그러나 현재 이 해역의 조업 허가권을 가진 러시아가 일본으로부터 보상을 받는 조건으로 내년부터 제3국 어선의 조업을 금지시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입어료 수입을 러시아에 보상해주면서까지 제3국 조업을 금지하려는 것은 남쿠릴 열도와 주변 수역에 대한 러시아의 실효적 지배권이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두 나라는 얼마전 이같은 내용의 어업협정을 맺으려다 한국측의 강한 반발로 일단 주춤한 상태다.
이 문제와 관련, 한국과 일본은 25일 도쿄에서 외교 수산 당국간 고위급 협의를 가졌다. 양측은 이날 “꽁치 조업 문제는 두 나라 정상 회담 합의의 기본 정신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앞으로 고위급 협의 등을 통해 해결책이 도출되도록 계속 노력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이같은 협의가 단순한 외교적 수사(修辭)로 끝나게 해서는 결코 안된다. 반드시 조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관철해야 한다. 남쿠릴 열도의 꽁치잡이는 단순한 소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해안 어민들의 생존권이 걸려있는 중대 사안이다. 현 정부는 지난 98년 신 한일어업협정으로 수많은 어민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어선들은 폐선조치되고 선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지금도 술과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부는 이같은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꽁치잡이 어장을 어떻게 지켜나갈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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