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편물을 받으면 가슴이 설레였다. ‘누가 무엇을 보냈을까’ ‘무슨 내용의 편지를 썼을까’ 가슴이 두근거리며 편지나 소포를 뜯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에서 자랄 때는 특히 올만한 곳에서 우편물이 채 안오면 일부러 나가 우체부를 기다렸다 우편물을 건네 받고 좋아하던 일이 많았다. 그래서 반가운 편지나 소포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해주는 우체부가 고마웠고 기쁨을 전달하는 우체부들은 덩달아 보람을 느꼈었다.
이처럼 우체부와 우편물 사이에 얽힌 순수하고 아름다운 정서들은 911 테러 후 어디론가 사라지고 백색가루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체부나 받는 사람이나 이제는 우편물을 보면 반가움 보다는 두려움이 앞서고 너도나도 고무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써야만 마음놓고 우편물을 분리하고 뜯어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가정집인데도 발신인이 없는 메일은 다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하니 이 정도면 우리도 머지않아 뉴욕 타임즈 기자처럼 글도 가죽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쓴 채 써야 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을 이처럼 공포와 혼돈으로 몰아넣고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경제적인 손실까지 엄청나게 미치는 백색가루, 이로 인해 유발되는 탄저병은 생전에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병이다. 병이란 원래 자연에 의해 발병돼 인간은 그 것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려고 연구하고 치료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이렇게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고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려고 인간이 만들어 쓰는 법이 어디 있는가. 이 것은 문자그대로 천인이 공노할 일이다.
줄리아니 시장은 이 병이 어떻고 치료약이 나오고 예방이 가능하고 문제도 없다고 큰소리치지만 문제는 그 병 자체보다도 병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이렇게 세상을 흔들어 놓는 것은 빈 라덴의 월드트레이드 센터 공격보다도 더 심상치 않은 공포와 혼란으로 우리를 밀어 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만 해도 탄저병을 놓고 단순히 세균무기, 모슬렘, 빈 라덴, 대량 살상 등의 용어로 연결 지어 말하더니 이제는 이 것 보다 우편물, 공포, 흰 가루, 우편물의 지연, 체제 붕괴 등의 새로운 용어들이 앞지르고 있다.
탄저병으로 인한 사망확률은 사실 교통사고의 100분의 1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도 관계기관의 민감함과 호들갑으로 공포감이 무한대로 치솟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제는 자라 등을 비유한 솥뚜껑의 공포 시대로 흰 가루만 보고도 놀랜다고, 앞으로는 국수도 흰떡도 흰 가루에다 물감을 들여서 먹어야 되는 시절이 오는 것은 아닌지. 요즈음은 우편을 이용해 판매촉진이나 기부금을 거두던 단체나 사업체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편을 이용한 마케팅을 하면 어느 정도의 회신을 기대하는 것이 사업의 기초인데 탄저병 소동 이후로는 반응들이 거의 없어 어려움을 크게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편물을 받을 때는 발신인을 제일 먼저 보게 마련인데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오게 되면 사람들이 공포감 때문에 아예 뜯어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편지를 하면서 원본에 싸인이라도 해야 상대방이 안심하고 뜯어볼 수 있을라나 보다. 아니면 겉봉 뜯어주는 회사를 차리거나 살균을 해서 뜯어보아야 되는 것은 아닐런지. 그래서 우표를 쓰는 대신 Pitney Bows의 서비스를 통해 보낸 사람의 신원을 미리 알리는 재빠른 조치를 취했다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러자니 시간은 시간대로, 추가비용도 많이 들고 체재도 엉망으로 많은 혼란과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사실이다. 한 달만 있으면 연말연시 우편물의 홍수가 예상된다. 하루빨리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그 많은 혼란과 문제는 어떻게 감당하고 누가 책임지고 통제할 것인가.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어느 정치학교수의 인용은 갈수록 우리를 더욱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우편물이 살인적인 비수로 바뀔 줄 일찍이 누가 알았겠는가. 신이 나서 봉투를 뜯던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지 그 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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