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바람에 휘날리는 그린우드 공동묘지(Greenwood Cemetery)의 잔디밭에 앉아 눈앞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M.V.의 자태를 바라보고있다.
M.V.는 ‘Merrello Volta’의 이니셜이다. 그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전설처럼 들려오고 마피아 단원에 시집가던 날 교회 계단을 내려오다 신랑을 향한 총탄이 애꿎게도 그녀를 관통해서 면사포를 쓴 채 계단에 쓰러져 누워있는 형상이다.
하나의 철제 조각품이 되어 신부에게 바치는 꽃다발을 안은 채 비스듬히 누워있는 그녀의 뒤로 위로만 위로만 향하듯 커다란 석제 십자가가 맑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고통이 깃들은 그녀의 얼굴을 만져보는 손끝에 그녀의 고통이 닿는 듯 하고 기구한 그녀의 운명에 애틋한 연민의 정이 파르르 전율처럼 지나감을 느끼고 있다.
1911년, 90년 전 뜻밖의 죽음을 당했던 M.V.의 삶이나 ‘힐러리’의 말처럼 일하러 나갔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떼죽음을 당했던 무역센터의 젊은 엘리트들의 그것과 차이는 뭔가 생각해 보고 있다. 그들이 떠난 뒤에 남기고 간 더 많은 아이들에게 역사는, 그리고 뒤에 남은 우리들은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하나 생각도 해 본다. 운명을 탓하며 다독거리기에는 너무나 참담한 마음이 들고 있다.
모든 종교는 사랑과 자비를 설파하고 있다. 시대를 살아간 현인(賢人)이나 철인(哲人)도 마찬가지다. 증오를 버리고 사랑으로 삶을 살자고 한다. 그러나 사랑을 주다 사랑의 저버림을 받을 때, 자비를 베풀다 증오의 응보를 받을 때 우리는 다른 한쪽 뺨을 내밀어야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보시(布施)만을 마음 속에 간직해아 하는가. 인간이 지닌 한계 극복에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9.11 참사가 지나니 탄저병이 이곳 저곳에서 발생하고 사람들의 목숨을 또 앗아가고 있다. 걸릴 확률은 벼락 맞기 보다 어려울지 모르지만 무작위적이고 불가측성 행위로 사람마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 떨고 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더라도 약한 자의, 핍박받는 자의 세상을 향한 마지막 발악이더라도 너무나 비겁하고 비인간적 행위가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비뚤어진 사생관(死生觀)의 극치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의식이 싹튼 후부터 사람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갈 것인가 끊임없는 질문 속에 살아가리라 믿는다. 죽음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의에 죽어간 결혼식날의 M.V.나 일하러 나갔다 죽음을 당한 숱한 젊은이들은 삶과 죽음이라는 난해하면서도 사치스러울 수도 있는 명제의 마침표를 스스로 표기도 못한 채 질문만 안은 채 세상을 하직한 셈인가.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춘하추동이라는 순환계절을 부여받은 자연은 축복받은 셈이다. 한번 가면 되돌아 올 수 없는 인간은 짧은 기쁨, 기인 슬픔, 그리고 병들고 죽어가는 삶의 일과성(一過性) 속에 오늘을 사유하며 살아야 하는 숙명을 부여받은 셈인가.
9.11 이전의 세상과 9.11 이후의 세상은 확연히 다름을 우리 모두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슬픔이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무역센터의 붕괴 장면이나 뒤에 남은 자들의 끊임없는 애도와 폭격에 시달리는 아프가니스탄의 황폐와 굶주림도 우리를 우울하게 하지만 9.11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삶에 대한 정신적 황폐함과 죽음의 공포에 대한 증폭은 살아남은 자들의 내일을 어둡게만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나름의 사생관을 확립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자유를 사랑하는 자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문명을 사랑하는 모든 사라들은 문명을 지키기 위해, 인류 파괴가 아니라 지구 공동선을 창조하기 위해서 그들이 ‘알라’신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의지 만큼 강하게 우리의 의지를 정제(Crystalization)해 나갈 때 저들이 의도하는 공포로부터 탈출하고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참선하는 절간의 스님처럼 무심(無心)의 세월속에 살 수 없는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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