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트레이드 센터 참사 현장의 통행 통제가 다소 풀린 날, 그곳에 갔었다. 당시 사고가 난 지 40일이나 지났지만 현장은 아직 타는 연기와 먼지가 자욱했고 어떤 빌딩에서는 먼지를 씻어내는 청소를 하느라 아직도 물방울이 행인의 머리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대형 성조기가 빌딩 전면을 뒤덮은 증권거래소 건물을 비롯, 인근 빌딩들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주저앉으면서 날아 온 파편과 시커먼 재를 닦아내는 빌딩 벽 청소를 몇 번이나 했다고 하나 손이 채 못 미친 주차장에는 비가 몇 번 지나갔음에도 시커먼 먼지가 보였다.
아스팔트 위의 흙먼지는 다 닦여지지 않아서 흙이 그대로 울퉁불퉁하게 밟혔다. 낫소 스트릿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한 한인은 카메라를 들고 몰려든 관광객들 때문에 오가는 인구는 사고 전보다 더 많아졌지만 실질적인 소비자는 아니라고 한다.
시커먼 쓰레기 비닐봉지 더미가 현장 옆에 쌓여있고 경찰 가이드 라인 밖에서는 근처 빌딩에서 일하는 와이셔츠 차림의 신사들이 담배를 피면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구조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나 관광객이나 아무 말도, 아무 동작도 못하고 그저 서있을 뿐이었다.
한 친구가 있다.
83년 임신 중인 몸으로 혼자 이민 와서 아기를 베비 시터에게 맡기고 생선가게 허드렛일부터 시작하여 델리 캐셔를 거쳐 10년 전 월스트릿 직장여성을 상대로 번듯한 옷가게를 열었다.
3년 전 재혼하여 생활에 안정을 찾고 부부가 열심히 장사를 하던 차에 이번 사고로 그야말로 그동안 이룬 아메리칸 드림이 하늘로 날아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고 3일전 대학 기숙사에 들어간 외동딸이 자신이 살아온, 참사 현장 바로 옆 아파트의 무참한 상태를 바라보고는 “쳐다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네” 하더니 학교로 돌아가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부터 장학금 탈 수 있게 공부만 하겠다”는 전화를 해왔다고 한다.
남들보다 몇 갑절 호되게 10대를 지내며 엄마의 속을 무던히도 썩이던 딸이 의젓하게 철든 말을 하니 그녀는 잃은 것이 무엇인지, 얻은 것은 무엇인지 따질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또 참사 현장 바로 근처 월드 파이낸셜 빌딩 로펌에서 일하던 후배 변호사는 아직도 제 빌딩으로 못 돌아가고 타임스퀘어에 있는 호텔 방 하나에 4명씩 들어가 일을 하고 있다. 산만한 환경이 불편한 피난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고 당일 못 갖고 온 차를 경찰이 브루클린 지역으로 가져다 주었고 꼭 필요한 자료는 경찰 입회 하에 조금씩 가져온다며 ‘이 정도야 뭐 괜찮다’고 했다.
내년 초면 원래 빌딩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그녀는 모처럼 쉬는 주말이면 저소득층을 위한 서류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그 일대 아파트 주민은 사고 후 며칠간 전기가 끓어지고 물이 안나와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가 돌아오니 온 집안 가득 흙먼지가 쌓였지만 날리는 먼지 때문에 청소기를 쓸 수 없어 물 청소로 그 먼지를 다 닦아내느라 허리가 끊어지게 아팠다는 고통도 호소했다.
그래도 이들은 말한다.
‘불구덩 속에서 죽은 사람도 있는데 뭐, 이런 불편쯤이야.’
그렇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 지금 우린 여러모로 불안하고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경악의 그날을 같이 보았고 후속 테러의 공포를 함께 겪고있는, 공통의 아픔을 지닌 이웃이 얼굴 없는 적보다 훨씬 많다는 것에 위로 받자.
그전 같으면 길이나 슈퍼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무심했지만 지금은 전철이 불통되면 함께 걸어서 다리를 건너고 몸이 불편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괜찮으냐고 물어보고 있다.
인종을 떠나 같은 뉴요커들 모두, 서로 가까운 친구가 된 것 같지 않은가. 우리는 정말 이번 사고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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