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이 16세였던 1942년 7월29일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울산에서 주인의 심부름으로 밖으로 나갔다가 영문도 모른채 일본인에 의해 강제로 트럭에 실려 중국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본군의 성노리개가 돼 3년간 기억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참담한 생활을 했습니다.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하고 여지껏 살아야만 했던 우리같은 피해자들이 어떻게 일본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꽃다운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에서 갖은 고생 끝에 58년만인 2000년 6월 꿈에 그리던 모국땅을 밟을 수 있었던 이옥선 할머니(75)는 당시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는 듯 몸을 떨었다. 29일과 30일 양일간 래디슨 윌셔 호텔에서 ‘성노예와 강제징용’을 주제로 열리는 일본의 반인륜 범죄 컨퍼런스에서 증언을 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이 할머니는 27일 민족학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매일 가죽혁대로 기절할 때까지 구타를 당하고 먹을 것이 없어 들판의 풀뿌리를 캐 먹으며 연명해야 했다"며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부인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파렴치한 행위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또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간 뒤 3년만에 해방을 맞았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지독한 성병 뿐이었다"며 "결국 이로 인해 자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지난 시간을 담담히 소개했다.
중국 용정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서 쓸쓸히 50여년을 보냈다는 이 할머니는 위안부 및 강제징용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젠 세계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아직도 중국에는 수치심 때문에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위안부 출신 한인할머니들이 여러명 남아 있다며 이들에 대해서도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srhwa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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