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어느 한인 송년회에 참석했을때의 일이었다. 저녁을 마치고 여흥순서로 들어가 2인조 밴드에 맞춰 여러 사람이 무대에 나가 노래를 하기도하고 춤도 추었다. 이러기를 두어번 반복하다보니 장내는 어지간이 진이 빠진 분위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때 무대한쪽에서 고막을 찢는듯한 꽹과리 소리와 함께 강렬한 색깔의 한국전통복장을 한 풍물패가 나타났다. 장내를 울리는 묵중한 징소리, 둔탁한 북소리가 귀를 울렸다.
순간 장내의 분위기가 일신되며 참석자들의 얼굴에 일시 홍조가 깃드는가 하더니 슬슬 한 두사람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날 송년회는 풍물패의 가락에 따라 모두 하나가 되어 손을 잡고 어깨를 비비며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다 끝났다. 밴드 음악분위기는 풍물패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풍물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 송년회의 추억은 풍물의 가락과 감흥만으로만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와 전통음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1950-60년대에 한국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녔던 한인들은 학교에서 국악을 비롯한 전통음악에 대해 배운 바가 없어 대부분 무지할 것이다. 또 당시에는 우리의 음악인 전통음악을 서양음악에 비해 낮추어보는 경향마저 있었다. 음악시간이라 하면 으레 양악의 이론과 실기를 배우는 시간이지 한국의 음악이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었다. 넋이 빠진 교육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전통음악에 대해서는 그저 어른들로부터 임방울 등 명창에 대한 전설같은 얘기를 듣거나 간간이 지방을 순회하던 국극단들의 공연에서 ‘한국의 소리’를 귀동냥하던 시절이었다.
그후 서울생활을 거쳐 이민 길에 올라 오늘에 이르렀으니 전통음악과 제대로 접해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소리의 고장’으로 알려졌고 얼마 전에는 ‘세계 소리축제’ 까지 개최했던 전주출신인 필자의 전통음악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이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다른 지방출신의 전통음악에 대한 인식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가 있겠다.
이 같은 배경을 가진 한인들이 모였던 그 송년회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뒤흔들었던 전통음악의 ‘힘’ 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이것은 비록 우리가 과거 오랫동안 우리의 전통음악을 알지 못하고 천대했더라도 우리의 유전자 깊은 곳에 국악의 가락이 녹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우리는 근대화진입 이전에 일제에 의해 불행한 역사와 문화의 단절을 맛보았다. 이 불행한 사태는 해방후 에도 계속돼 우리는 우리역사와 문화와 음악은 외면하고 서양문화와 음악만을 앞세웠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한국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에 대해 서양인들보다 더 무지하다는 얘기를 듣게까지 됐다.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전통음악의 가락에 대해서는 그 가락의 구조며 장단이며 역사에는 무식하면서도 생경한 서양의 고전음악이나 팝에는 일가견을 피력하는 명사들이 많은 것이 우리 실정은 아닌지. 이스라엘의 역사라 할 수 있는 구약은 줄줄 외면서도 우리의 역사에는 감감한 코리언 크리스챤들은 어떤가.
자기 것은 허술히 하면서 남의 것만을 귀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나 집단이나 국가의 종말이 어떠하다는 것은 우리주변이나 세계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다. 그 숱한 한인교회에서 조차 우리음악의 가락을 정녕 들어볼 수는 없는 것일까. 전통음악 전문가들에 의하면 전통악기로도 교회음악은 물론이고 현대음악의 연주도 가능하다는 것이며 한국의 여러 교회에서는 이미 실연중이라고 한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미주 한인사회에도 한국의 전통음악의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있으며 이미 풍물패는 한인행사장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확고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국음악을 가까이 하다보면 자신은 물론 2세들의 정체성 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또한 코리언 아메리칸의 문화형성에도 기여가 될 것이다. (신대철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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