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탈레반 정부가 국민들에게 극단주의적 회교원리를 강요하면서 TV를 법으로 금지시켰을 때 아프간 사람들은 언젠가는 다시 시청할 날이 오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TV 수상기를 땅에 묻었다.
지난 주 수도 카불 주민들이 다시 TV를 즐기는 동안 카불을 비롯, 쿤두스, 마자르 이 샤리프 등지에서 투항한 탈레반 병사들은 나중에 사용하기 위해 자신들의 AK-47 소총을 역시 땅에 묻었다.
하지만 이 총은 무슨 용도로, 누구의 편에서 다시 사용될까.
충성이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투항과 새로운 군에 대한 복종서약이 비일비재했던 지난 주 탈레반 정부군의 숫자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었다. 탈레반 정부군 병사들은 자신의 부족 및 인종구분, 회교에 대한 열정, 그리고 생존에 대한 욕구에 따라 충성심을 다시 계산했다.
"사람들은 탈레반이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탈레반에 대한 지지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한 파키스탄 관리는 말한다. 탈레반에 대한 지지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병사들의 숫자도 함께 줄었다. 이 가운데는 징집 당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회교를 열렬히 신봉해 자원한 사람도 있고 순전한 기회주의자도 있다.
외국용병 1만명을 제외하고 자신을 ‘탈레반’이라고 부른 4만~5만명의 병력 가운데 최소한 3분의1이 탈레반 정부군의 상징인 검정색 터번을 벗었다. 정부군에서 이탈한 것이다.
"탈레반은 아직도 존재한다. 다만 다른 편에 합류한 것이다"
현재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 거주하고 있는 전 아프간 무자헤딘 출신의 압둘 루브($!)는 주장한다. 아프간 남부에 있는 반 탈레반 파슈튠 병력의 숫자는 최소한 1만명으로 추산되는데 그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북부동맹군의 숫자도 그동안 두 배가 불어 4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상당수의 탈레반 병사들은 집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수천 명은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스며들었다.
"대부분의 탈레반 지도자들은 현재 파키스탄에 있다. 미국이 폭격을 멈추면 탈레반들은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복귀할 것이다"
전 탈레반 홍보책임자로 지금은 페샤와르 외곽의 난민캠프에 있는 모하메드 사파이의 주장이다. 마자르와 쿤두스에서 미군폭격과 북부동맹군의 공격으로 외국 용병을 포함한 수많은 탈레반 전사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아직도 탈레반의 종교적 중심지인 칸다하르에는 최소한 3,000명의 탈레반군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칸다하르의 탈레반군은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반탈레반 병력에 의해 포위돼 있다. 그런데 포위군의 지도자들 가운데 하나는 굴 아그하 세르자이로 그는 바로 수 년전 이 도시를 약탈한 장본인이다.
파키스탄의 한 관리는 아프간의 난감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만약 미국이 파워를 이들 약탈자와 도둑들에게 넘겨주면 탈레반은 6개월 안에 컴백할 것이다. 그리고 아프간 사람들은 이들을 다시 환영할 것이다. TV를 다시 땅에 묻어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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