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집권과 함께 외국인들에게 금단의 땅으로 변한 칸다하르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도로 가는 서방의 젊은 히피들이 들끓던 곳이다.
칸다하르에 마취제와 아편이 넘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칸다하르에는 ‘성의사원’을 비롯해 많은 사원과 무덤과 알록달록하게 치장된 특매장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곳 ‘성의사원’에 모셔진 성의는 예언자 모하메드 자신이 걸치고 다녔던 것이라고 회교도들은 믿고 있다.
파슈툰족의 심장부로서 아프간 남부의 옥토에 자리잡은 칸다하르는 동서남북으로 제각기 뻗어나가려던 페르시아·터키·아랍·몽고인들이 수세기동안 패권을 다투며 전쟁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칸다하르는 18세기 파슈툰족 출신의 왕 아흐메드 샤가 왕국의 도읍지로 정했다. 아프가니스탄 창업군주인 그의 웅장한 왕능은 오늘날에도 칸다하르를 압도하는 볼거리로 남아 있다. 이 때문인지 칸다하르는 훗날 수도로 변한 카불보다 언제나 전통이 어려있는 곳으로 이곳에는 서방의 바람도 그다지 세차게 불지 못했다.
대부분 관광객이 1978년 아프간에 일어난 친공 쿠데타와 함께 자취를 감추면서 칸다하르는 버려진 땅이 됐지만 1980년대 옛 소련군과 무자헤딘은 이곳을 두고 처절하게 피를 흘렸다. 소련군이 철수하자 촉발된 부족간 권력투쟁과 이로 인한 내전은 무질서와 혼돈만을 가져왔다.
1994년 칸다하르를 장악한 탈레반은 질서를 회복해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으나 부르카로 상징되는 철저한 원리주의만을 고집, 민심이 이반됐다. 처음에는 금지됐다가 워낙 시민의 반발이 거셌던 축구만이 응원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허용됐을 뿐이었다. 오랜 세월 영욕을 거듭하던 칸다하르는 9·11테러에 대한 미국의 보복 공습으로 또 다시 고아의 도시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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