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일본 유력지들인 아사히(朝日)와 산케이(産經) 신문은 일본 교과서 역사 왜곡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란 극우 민족주의 단체가 편찬한 교과서를 일본 정부가 채택하려는 문제를 놓고 두 신문이 견해를 달리한 것이다.
아사히는 이를 강하게 비판하는 쪽이었다. 당시 국내외 보도에 따르면 아사히는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1910년 조선 병합을 ‘당연한 조치’로,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규정, ‘400여년간 앵글로 색슨족으로부터 받아온 지배와 속박에서 동양 민족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를 펴왔다”며 “역사 인식에 큰 문제가 있는 이 단체의 교과서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또 “이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국민이 당한 괴로움과 침략을 받은 다른 나라 사람들을 무시한 일방적인 해석이다. 이런 역사관을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이 다음 세대를 담당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정말 좋은 것일까 하는 의문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아사히는 “정치가 혼미하고 경제도 침체한 일본은 지금 일종의 자신감 상실, 폐색(閉塞) 상황에 처해 과거를 미화하는 역사관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분위기에 있다. 하지만 괴로울 때야말로 더듬어 온 길을 빈 마음으로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극우 민족주의 성향인 산케이는 “지금까지 교과서 문제는 일본 언론이 문제삼고 중국과 한국이 가세해 일본 정부가 정치 개입하는 악순환을 거듭해왔다”며 “82년 ‘침략’ ‘진출’ 논쟁(태평양전쟁을 일본은 외국에 침략한 것이 아니라 진출이라고 한 주장) 당시에도 마찬가지였고, 근린조항이라는 것이 만들어져 일본을 비하하는 기술이 그 후 눈에 띄게 늘어났다. 교과서는 일본의 미래를 맡을 학생들이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산케이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런 의미다. “(왜곡된 역사가 들어간) 교과서 채택 문제를 왜 ‘우리 언론’이 나서서 반대하느냐. 교과서를 서술하는데 ‘우리’는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한국, 중국 등 주변국들의 항의에 일본 정부가 물러서지 말고 이 교과서를 당당하게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사히와 산케이는 비단 교과서 역사 왜곡 문제에만 대립해온 것이 아니다. 산케이는 특정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소아적 민족주의, ‘맹목적 우리’를 끄집어내 극우 성향 일본인들을 부추겨 왔다.
반면 아사히는 자사의 편집 원칙을 보편적 양심과 객관적 정의 구현에 두고 있다. 당연히 일본 국민의 일반 정서나 여론에 배치되는 기사와 사설이 지면에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다 보니 아사히는 때론 반민족적 언론, 반애국적 신문으로 매도당하기도 한다. 특히 일본에서 상당한 세력과 숫자를 가진 극우 단체들로부터는 숱한 위협을 받는다. 하지만 외국 지식인은 물론 양식있는 일본인은 아사히를 ‘일본의 양심’이라고 높게 평가한다.
이처럼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논지를 견지하고 있음에도 아사히는 830만부라는 판매부수를 자랑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숫자는 일본인의 ‘양심 지수’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장 대표적 독립운동가로 추앙하는 안중근 의사를 대다수 일본인은 ‘테러리스트’로 본다. 반면 안중근 의사에 피살된 대륙 진출주의자 이토 히로부미는 ‘원대한 포부와 애국심을 가진 정치인’으로 존경한다. 과연 누구의 평가가 맞을까. 우리는 우리네 시각이, 일본은 자기네 인식이 옳다고 믿는다. 제3자의 눈에는 아마도 ‘안중근=조선의 독립투사’, ‘히로부미=일본의 식민주의자’로 판정하는 쪽이 많을 것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평가는 민족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나며 해당 민족이 내린 판단이 제3자에게는 ‘파쇼니즘적 편견’으로 비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본보기다.
아사히를 읽느냐 산케이를 보느냐는 독자의 판단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신문제작 방침은 아사히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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