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의 미국인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주쳤다. 한 명은 CIA 특수요원으로 전쟁터에 파견된 자니 마이클 스팬(32)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진정한 회교국 건설을 위해 탈레반에 가담한 존 워커(21)였다.
둘은 취조관과 포로로 잠깐 대좌를 했고, 수분 후 운명을 달리했다.
스팬을 취조한 뒤 몇분 후 포로들의 난동으로 전사한 스팬은 10일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힌 반면 워커는 ‘반역자’라는 비난 속에 아프가니스탄 미 해병기지에 갇혀 있다.
둘은 삶의 행로가 다르듯 성장배경도 판이했다. 스팬은 앨라배마의 소읍에서 성장한 ‘컨트리 보이’였고, 워커는 캘리포니아주의 부촌 머린카운티에서 자란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스팬과 워커는 16세 때 각기 제 갈 길을 정했다. 스팬은 해병에 입대한 후 CIA나 FBI에 들어가겠다는 뜻을 세운데 비해 ‘말콤 X’ 자서전에 깊은 감명을 받은 워커는 정통 회교주의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가난한 부동산 개발업자의 아들 스팬은 앞만 보고 돌진하는 ‘터프가이’였다면 잘 나가는 변호사의 아들인 워커는 명상을 즐기는 사색가였다.
회교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며 16세 되던 해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모든 CD를 인터넷을 통해 처분한 워커는 예멘을 거쳐 지난해 파키스탄으로 들어가 경전 공부에 정진했다. 이혼한 그의 부모는 워커의 ‘정신적 유랑’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파키스탄에서 경전에 묻혀 지내던 워커가 사라진 것은 올해 5월15일. 코란의 4분의1을 통째로 암기할 정도로 경전 공부에 열심이었던 그는 스승과 부모, 학우들에게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종적을 감춰버렸다.
워커가 파키스탄에서 유학하던 시기를 스팬은 CIA에서 보냈다. 어번 대학을 졸업하고 해병에 입대한 스팬은 그보다 한발 앞서 군문에 들어온 캐더린 앤 웹과 화촉을 밝히고 두 자녀를 두었으나 둘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결국 2000년 4월 별거로 끝났다.
1999년 스팬은 훈련만 있고 ‘실용’이 따르지 않는 해병을 떠나 CIA의 특수부대에 지원한다. 이때부터 그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올해 초 CIA 직원인 샤논과 재혼한 그는 6개월 된 아들을 남겨두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다.
서로 다른 길을 달려온 스팬과 워커는 북부 아프가니스탄에 세워진 칼라 장히 교도소에서 만났고, 영원히 결별했다. 스팬의 최후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초병을 해치고 난동을 일으킨 포로들이 그를 구타한 후 사살했다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수류탄을 든 포로가 그를 끌어안고 자폭했다는 증언도 있다.
워커는 탈출을 기도하던 중 다리에 총을 맞고 지하실에 숨어 지내다 1주일 후 발견됐다. 스팬은 영웅으로 죽었다. 그렇다면 워커의 죄목은 무엇일까. 반역인가, 아니면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는 것인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