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양민교(소아정신과 의사, 버지니아주)
뉴욕은 나의 꿈을 키워준 소중한 추억의 도시다. 눈이 하얗게 뒤덮힌 뉴욕은 꿈속에서 그려보던 별천지처럼 마음을 설레게 했고 나의 청춘을 불사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오밀조밀 달라붙은 단독주택의 아름다운 풍경은 동화속 장면처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학교는 퀸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큰 도로가 지나가는 길가임에도 숲에 숨겨져 있었고, 포스트가(家)가 헌납했다는 붉은 벽돌의 고전적인 학교 기숙사와 강의실이 있는 교정은 옹기종기 잔디가 곱운 넓은 공터를 끼고 줄줄이 서 있었다.
나의 뉴욕생활 1년이 고생 바가지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형님이 브루클린에서 수련의 생활을 하고 있어서 김치가 간절할 때는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형님 아파트 근처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공부가 힘든 나에게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맨하탄은 이야기로만 듣던 어마어마한 마천루가 있는 보물섬처럼 느껴져서 큰 기대를 걸고, ‘때가 오겠지’ 기다리기만 했었다.
일년이 좀 지난 후 귀도 트이고 장학금을 아껴서 저축한 돈과 형님이 보태준 돈으로 처음으로 내 차를 사게 되었을 때의 그 기쁨이란 형언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인도, 영국, 아프리카 학생들을 싣고 운전면허도 없이 부지런히 그들을 실어 나르곤 했는데, 아주 추운 겨울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길에 서게 되었는데 타이어를 바꾸는 법을 알지 못해, 그냥 덜덜덜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 경찰이 와서 고맙게도 타이어를 갈아주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얼마 후 부지런히 차를 몰고 다닌 덕에 운전면허 시험도 보고 면허를 딸 수 있었다. 그해 12월 나와 한 후배는 뉴욕방문의 대장정을 결심하고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밤에 롱아일랜드 하이웨이를 타고 뉴욕시, 맨하탄으로 진입을 기도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고 나는 불행히도 495 환상도로에서 뺑뺑 돌다 간신히 돌아오는 길을 찾아 둘 다 배를 곯으며 학교 기숙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불쌍한 나에게도 봄은 와서, 대학교 소개지의 커버 인물로 등장하기도 했고 나를 정성껏 돌봐주던 교수를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땅콩을 던지며 싸우는 대학 인근 술집에도 갈 수 있게 됐고 맨하탄의 차이나타운에 가자고 조르는 미국 친구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
이렇게 나의 청춘을 보낸 추억의 고장 뉴욕, 그래서 더욱 테러로 상처입은 뉴욕을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프다. 그리고 뉴욕, 뉴욕… 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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