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맨하탄에 나가면 거리와 백화점, 식당 안팎이 얼마나 예쁜 지 모른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테러 사건이후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문화명소들을 위해 뉴욕주가 시행하고 있는 ‘뉴욕문화 사랑운동’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서, 사실 이것은 핑계이고 오랫동안 보고싶었던 뮤지컬과 발레를 보기 위해서 12월 들어 맨하탄을 나갈 일이 자주 생기고 있다.
맨하탄 곳곳마다 빨강·노랑·하얀 색에 푸른 색까지, 금색·은색과 어울려 반짝거리는 트리 장식이 행인과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9.11의 상흔은 성조기 문양 장식으로 나타나 어디든 한 자리를 차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 속에 아픔이 내재되어 있음도 여실히 보여준다.
가으내 우울했던 맨하탄 거리는 경기가 서서히 살아나면서 길을 가득 메운 사람의 물결이 제법 크리스마스 기분을 주고 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동네의 집들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것을 보고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았다. 한 집 건너 두 집은 꼭, 어떤 블록은 모든 집들이 누가 누가 예쁘게 장식하나 경쟁하듯, 온갖 화려함으로 집과 정원을 치장하여 구경하는 눈을 풍요롭게 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으레 집안을 장식하는 것으로 알고 가족과 초대받은 손님만 아껴가며 보는 것에 익숙한 한국 정서로는 현관 밖, 유리창, 앞마당까지 나뭇가지에 붉은 리본을 매달고 아기예수 탄생을 극화한 조형물을 장식하고 화사한 줄 라이트를 설치하는 것이 경이로웠다.
그래서 차를 타고 동네를 돌면서 장식이 예쁜 집을 찾아 구경 다니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열 블록 정도를 가면 지붕 꼭대기부터 앞마당까지 오색등이 화려한 라이트를 장식하고 말구유의 아기예수, 동방박사, 8마리의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산타 등등 온갖 장식을 다 해 놓은 집이 있었다.
차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주차 해놓고 일부러 구경하고 가고 카메라를 들고 찾아와 기념 사진을 찍는 등 한밤 내내 구경꾼이 그 집을 에워싸고 있어 로칼 뉴스에도 나올 정도였다. 그런 것들을 보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남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베란다와 창문에, 현관 앞에 장식을 하는구나 싶었다.
자신과 가족, 친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타인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12월부터 1월까지 근 두 달간 불을 밝히는 그 마음이 예뻤다.
단독주택이나 아파트 창문 가에 놓인 스탠드도 그랬다. 불 켜진 창가 뒤쪽으로 어렴풋이 트리나 선물 꾸러미가 보이기도 하여 마음이 푸근했다. 발이 퍽 퍽 빠지도록 새하얀 눈이 쌓인 날이면 스탠드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더욱 따스했다.
독일 신학자·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그 밑에 서있는 상록수의 끝이 뾰족한 것이 마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처럼 보여 자기 집에 그런 나무를 세우고 별과 촛불로 장식한 것이 처음에는 신교도 가정에, 점차 카톨릭 가정과 일반에게까지, 오늘날 우리집까지 전해지고 있다.
사실, 그 동안 우리 집은 실내에만 트리 장식을 했지 밖에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겨울은 좀 달라져야 할 것 같다.
9.11의 충격으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뉴요커들이 밝고 예쁜 창문과 베란다를 보고 그 마음을 달랠 수 있다면, 떠돌이 방랑자 같은 기분이 늘 한 구석에 남아있는 이민자들이 평화로움을 느끼고 거친 삶에 잠시나마 위안을 받는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번 연말연시에는 전기요금이야 얼마가 나오든지, 거리에 어둠이 내리면 앞마당과 창문, 베란다에 크리스마스 라이트를 켜두자.
멀리 바라보이는 빛 한줄기가 절망의 바닥에서 희망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하기를, 춥고 어두컴컴한 마음 한구석을 밝혀주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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